한참 맑기만 하던 따스한 가을 햇살을 가로막고 이틀 연일 가을 비가 내렸다. 서리가 이미 내린 10월도 마지막 가는 초겨울 문턱에 그것도 강풍과 더불어 떨어지는 잎새들을 흔들 어 버리고 있다. 지리산과 세계 곳곳에 산불, 한국의 정치판, 기업의 불도 꺼주는 가을비면 좋겠다. 가을 햇살과 가을비는 축제와 비통함을 극명하게 엇갈리게 한다.
봄 햇살이 고양이 털 같다면 가을 햇살은 캐시미어 양털 같다. 봄비가 만물을 깨우는 촉촉함으로 쓰 다듬고 온다면 가을비는 들뜬 생명을 잠재우듯 매정스럽게도 느껴온다. 너무도 흥분한 가을에 잠자 기 싫은 아이 억지 잠을 재우는 심술 나쁜 유모 같다.
오가며 들려 보는 알파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가을의 허드슨 강변, 깍아 세운 듯 절벽 위에 수랏 상 같이 잘 차린 화려한 잔칫상이다. 천년을 두고 아니 만년을 두고 흐르고 있는 저 강물은 순간도 같은 물이 아닌 새물이다. 그러나 그 물줄기는 볼 때마다 같은 흐름처럼 보인다. 절벽에 여기 저기 꽃꽂이라도 해 놓은 듯한 저 나무들의 고운 색깔도 날마다 시간마다 변하고 있지만 해마다 같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한번 왔다가는 인생도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육체도 그 정신도 순간이 다르게 변하다가 가는 것이 다. <나>는 그대로 난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사실 엄청난 시한적 변화를 이루었을 것이 다. 나이가 든다는 말이다. 노쇠, 노화의 현상이 태어나자 순간부터 그 인생의 죽음까지 일어 나는 것이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면 절망과 허무를 이겨내기에 엄청난 값을 치루고 가야 한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저 강물 누가 감히 막아 설 수 있을 것인가...슬 픔과 행복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나이는 들어가도 철들 줄은 모르는 나는 가을이 좋다가 싫어진지 오래다. 아니 가을이면 가슴앓이 같은 가을 감기를 쿨럭인지 오래 되었다. 그 이름 그대로 이렇게도 아름다운 미국 땅에 살면서 좋은 경치를 보면 고국의 그 어디에 와 있는 상상을 한다. 마치 처음 몇 년 미국의 달러 가치를 한국의 원화로 풀어 계산해야 제 값이 나오는 혼동이었다.
수구초심(首邱初心), 제비도 제철이면 제 고향으로, 기러기도 겨울을 피해 떼지어 가고, 거북이도 천 년을 살고도 제가 난곳으로 돌아와 죽고, 코끼리도 죽을 때 자신이 난 곳을 찾아와 죽는다. 가을은 어쩔 수 없는 그리움과 망향과 고독의 계절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사람과 자연 의 교감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다.
이때까지 미쳐 생각지 못했던 양로원이라는 곳에 있는 나이드신 어머니 아버지들이 마음에 걸려온 다. 해지는 가을 석양에 물끄러미 지는 해를 보고,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보고 있는 노인들도 모두 우리 같은 청춘과 젊음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로맨스와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언제부 터 양로원이라는 것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나는 옛날 한국의 온 가족이 함께 같은 지붕아래에서 같이 살다가 자녀의 효도 속에 만년을 보낸 세월을 그리워한다. 주름 잡힌 그 얼굴 구부러진 허리에 지팡 이를 들어야 일어서는 나이 드신 우리의 부모님들이다.
저들의 닳아진 손발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감사절이 아닐지라도 시간 되는대 로 자주 찾아 위로해 드리고 싶다.
만리 타국 뉴욕의 플러싱 쓰레기 밭 버려진 땅을 일꾸워 채소밭을 일꾸워 놓으신 그 할머니, 할아버 지들의 망향의 가슴앓이가 그대로 마음속에 파고들어 나는 가고 싶은 그곳을 두 번 다시 가지 못하 고 있다. 계절이 생명을 마감하는 이 시간에 우리의 부모님들을 생각하자. 후드득 후드득 비바람에 가을이 떨어지는 비나리는 가을밤이다. 세월 지난 미국에서 오동잎 소리에 연연하던 우리 부모님들의 가을의 소리를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시간은 아직 까지 비밀 속에 있다.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고 우리 지혜로 다 깨달을 수 없는 조 물주의 비밀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의식의 승화에 있다. 인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왜 살 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사람은 그 제복의 옷과 같은 인간이 된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한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이유와 핑계가 있을 뿐이다.
'Climb as though you were to live forever. Live as though you were to die tomorrow'-영원을 사 는 자세로 오늘을 힘을 다해 기어오르듯 살고, 내일 죽을 준비를 하듯 오늘을 살라.- 나의 일정 스케줄에 적어놓 고 살고 있는 말이다.
가을 인수봉 암벽 등반에 두사람이 부는 강풍과 비와 추위에 죽었다. 산을 왜 오르느냐고 물으니 '산 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암반 등반을 좋아하는 나 자신도 이 가을 오르다가 말지라도 미국의 요세미테 암벽을 도전하고 싶어진다. 인생은 암반에 줄타고 기어오르는 스피릿에 있다. 밧줄에 메달린 삶의 희열이 노래하는 순간이다.
우리 축구가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한일 양팀 이번 주말 한판 승부가 남아 있다. 한결같이 두 팀의 감독은 '승리의 판정은 정신력-스피릿에 있다.'고 정신력 키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생도 축구와 같다. 정신력 스피릿의 의식의 승화작용이 이 가을 더욱 암벽을 타고 기어오르듯 활 발해 졌으면 좋겠다.
오.헨리의 아직 남은<마지막 잎새>가 아직도 익을 줄 모르는 인간성숙의 의식 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가을 햇살 같이 따스하게 감싸주는 말 한마디의 온정으로 서로의 인생을 격려해 주는 가을이면 좋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