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겨울과 봄의 갈림길에서 진퇴를 거듭하며 가기 싫은 겨울과 오고 싶은 봄의 시새움이 치열하다. 마치 레임덕을 놓고 정권의 치고 박는 치열한 쟁탈을 보는 것과도 같다.
성급한 개나리 목련이 피었나 하면, 눈바람이 싹 쓰러버리는 심술과 오기를 부리기도 한다.
3월은 이해가 어려운 추상화하다. 현대음악이고 신세대적 감각을 가진 새로운 세대다. 엔니그마(Enigma)다. 그런데 현대 감각은 세대마다 제 나름대로의 신세대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때는 우리가 현대감각의 신세대였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요즈음 젊은 신세대의 변화는 몰라도 한참 모르고 살았고, 나대로의 세대에 집착하고 살았던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문화의 변화, 그리고 문화의 차이가 역사상 어느 때 보다 그 격차가 상상을 뒤 업고 있다.
20대를 날마다 만나고 사는 우리들에게, 또 우리 아들과 딸들의 문화의식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 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그들의 삶의 풍속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또한 지구상에 전쟁으로 폭발하고 있는 문명-문화 갈등이 빚어내고 있는 것을 보고, 문화인식의 새로운 아량과 양보와 타협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마음 준비가 늦은 감이 있다.
마을 어귀 정자 그늘 밑에서 긴 담뱃대를 물고 장기판을 놓고 한점 한점 시간을 끌며 골몰히 생각하며 패를 움직이던 세대 감각과 컴퓨터에 닌텐도를 비롯한 날마다 초고속을 자랑하며 쏟아져 나오는 전자게임을 태어나면서부터 눈만 뜨면 달라 붇는 세대의 감각센스가 진(Gene)이 다를 것은 너무도 분명 하다. 초고속으로 끌고 치는 마우스 감각으로 판단력에나 느낌에 있어 거의 본능적 전자본능이 된 것이다. 바이오 로봇 같은 인간도 로봇도 아닌 괴물일 수도 있다. 이런 세대에게 관심도 없는 옛날 문화를 풍속을 전통을 예절을 강요하면 바이러스 증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다. 이들 속에 들어가기 위해 먼저는 우리가 그들의 정서 속에 먼저 들어가 보아야 한다.
신세대의 감각적 느낌과 그 느낌 속에 탑재된 컨텐츠들은 우리세대가 감히 들여다 볼 수 없는 현실로 부상하고 있다.
인류문명-문화발상의 기원과 종족의 문화, 세대와 계층 간의 문화의식의 변화에 대한 정리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문명과 문화를 설명하기 전에 그것들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린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쟁의 잿더미가 씻기어진 후 자란 세대의 차이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보는 것이 가까운 지름길이다.
나라마저 잃어버린 유랑의 70대, 해방과 6.25의 잿더미를 지나온 60대, 반공을 국시로 한 50대, 새마을 운동에 길들어진 40대, 서울의 허허벌판 강남에 부(富)의 신천지가 개발된 30대, 컴퓨터 인터넷혁명의 풍요의 20대 의식 형성을 비교해 보고 종합해 보면 어쩌면 '따로 공화국' '따로 한가족'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음식 찌꺼기 남기는커녕 찌꺼기도 모자라서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술 찌꺼기로 허기를 때우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음식 찌꺼기 처리문제로 국비를 낭비해야 할 만큼 부국이 된 것이다. 구두 하나를 사면 평생 신을 각오로 몇 번이나 밑창을 갈고 또 갈아 신고, 옷 한 벌이면 외출복이 되던 시절, 시간을 보려면 동네 부자 집을 기웃거려 길게 걸어 논 추시계를 보아야 하던 세대가, 시계는 액세서리, 옛날 노래를 듣고 싶으면 손으로 감아 테이프를 조여 돌아가는 유성기가 있는 집에 모여 듣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 20세기의 이야기다. 터지듯 실은 만원 버스 속에서 땀으로 목욕을 하고 나오던 시절에 요즈음은 '골라 자동차' 시대 저마다 가고 싶고 입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가 가진 세대다. 노래도 전주 없이 일 절이면 족하고, 돈은 당당히 요구하고 칼같이 챙긴다. 실리적이고 직선적이다. 눈치를 안보는 좌절을 모르는 기죽지 않는 세대다. 촉각세대, 즉석세대다. 기회주의, 찰라 주의 위험도 있다.
순정 어린 동백꽃 사랑은 20세기 말이고 눈맞으면 '즉석 데이트, 계약데이트, 계약동거'도 상식이 되었다.
지나간 20세기를 세속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때 "해체의 세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의 죽음(니체)에서 20세기는 시작하여, 진리의 상대화(타르스키), 인식론의 종언(토마스 쿤), 철학의 종말(로티), 역사의 종언(푸쿠야마), 저자의 죽음(포스트 모더니즘)으로 20세기는 끝이 났다.
소위 신세대는 인문학 분야에서의 이러한 해체를 경험하면서 태어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앞 시대의 패러다임과 같은 구조에서 살수도 없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다른 방식의 삶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의견의 차이는 극복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격려 묵과 또는 환영의 대상이어야 한다. 단일한 사고 체계나 표현 양식은 어떤 모습으로도 제시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시대의 문화는 신세대의 책임이 아니라 이러한 방향의 문화의 세계화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우리자녀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권 전쟁의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봄을 부르는 3월은 어찌 보면 희생의 달이다. 21세기의 우리의 튼튼한 새 세대가 세계문화를 주도 할 수 있도록 언짢고 눈 골이 시려 오는 모습도 폭 넓게 보아야 하는 엔니그마(Enigma) 풀기다.
우리 세대는 지금 우리는 봄과 겨울이 맞붙어 싸우는 21세기 초고속 감각(感覺)세대를 위한 3월을 지나고 있다.
그래도 봄은 온갖 조화를 이루는 질서 있는 아름다움을 몰고 꽃 처녀로 오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