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 있는 봄이 없고, 기다리는 봄이 없다면 세상 돌아가는 세태의 살벌함에 절망의 골만 한층 더 깊어 질 것 같다.
40여년 전 제자가 교수가 되어 어느 일간지에 쓴 칼럼에 인용한 시구를 보고 , 나는 조용한 참회를 하고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
청산은 파헤쳐지고 창공은 돈벌이 황사 납덩어리가 끼어버렸다. 청산도 말이 없고 창공도 사라져 버린 우리네 '겨울 공화국'은 부패와 부정 과 탐욕의 쓰레기로 서울의 맑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고만 있다.
청산도 돈, 창공도 돈으로 흙먼지가 끼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도 돈이요 귀로 듣는 것도 돈이다. 냄새를 맡은 것도 돈 냄새다. 돈(금전金錢) 세상이 돌아버린 돈(미쳐버린)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행여나 혹시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한해의 희망은 세기가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어도 변할 줄 모르는 절망의 수렁의 늪 속으로 가라만 안고 있다. 로비 게이트사태를 보면서 이제는 어디서 국가의 장래를 보아야 할 것인지 칠흑 같은 암울(暗鬱) 만이 침묵하고 있다.
행여나 혹시나 정권이이나 구조변화에 기대를 걸었던 인간이 문제이고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식인 것을 이제야 새삼 깨닫고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사회정화와 인간 심성을 바로 잡는 가치관 확립의 종교가 있는 의미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종교는 지금 세상을 온통 살인과 증오와 분쟁의 원인이 되고 전쟁의 이유가 되고 있다. 종교탐심은 세상탐심보다 무섭고 추악하다.
미국의 9.11 테러사태에서 우리는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보고 있다. 미국시민이 이슬람 종교성전(宗敎聖戰)을 위해 같은 나라, 같은 시민을 향해 총구의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종교집단의 광란성이다. 광신(狂信)성이다. 종교성 탐욕이 종교성 미친 병을 만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알 카에다의 성전(聖戰)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테러 보복의 나날, 인도와 파키스탄의 캐슈미어 분쟁, 보스니아 전쟁, 인도네시아 기독인과 이슬람의 살상분쟁의 뿌리에 종교신앙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의 테러로 온 세상을 불안으로 몰아 넣은 이슬람이나, 순교라는 이름으로 지키는 찬란한 신앙이라는 이름의 의미 속에 악성(惡性) 바이러스가 하드웨어까지 갉아먹고 소프트웨어를 교란시키는 치명적인 암세포가 되어 잠복되어 있는 것을 본다.
한국은 올해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가 되었다. 월드컵 개최국 보다 먼저 시민의식이 월드컵에 걸 맞는 세계시민이 되어 한다. 손바닥 같은 작은 나라에서 그것도 두 쪼각이 나고도 모자라서 영호남 패싸움 정권은 치고 박고 수십 년 묵은 썩은 쓰레기를 뒤지고 있고 지역은 양분되고, 한국의 기독교의 이기적 기복적 탐욕의 의식은 유행성 독감처럼 퍼지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참으로 세례를 받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야한다.
몇 년 전 뉴욕에서 교회친선 체육대회가 열렸다. 어느 교회청년회는 삥 둘러 손을 잡고 소위 통성기도로 자기네 교회가 이기게 해달라고 아우성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그 교회는 우승을 못했다. 교회여, 기도를 바로 가르쳐 주라.
이런 세상에 흰눈을 뒤집어쓰고 침묵하는 겨울에 먼저는 나부터 그리고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계절이기를 바란다. 그래도 봄이 오는 춘삼월이 아직은 확실히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 부패쓰레기 왕국 우리네 한국부터, 나 자신 마음 속에 쌓여 있는 온갖 오물 쓰레기를 깨끗하게 정리해서 새봄의 찬란한 새 세계 새 생명의 부활을 기다리면 좋겠다.
쓰레기도 다시 썩으면 밑거름이 된다. 더 이상 썩을 것도 없는 한국판 부패가 꽃바람에 돈 바람이 날아가 버리기를 소원해 본다. 그래서 정권도 종교도 청산(靑山)을 보고 창공(蒼空)을 보는 봄을 기다린다. 세상을 휘어잡고 있는 돈과 종교가 물같이 바람같이 새 의식을 깨우는 봄바람으로 꽃바람이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