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미국의 표정은 어정쩡하다. 성탄을 위해 한 해를 산다는 미국 사람들이지만 올해는 어딘가 자유의 가치에 대해 숙연한 깨달음을 새롭게 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날부터 크리스마스 세일로 북적이는 백화점 상혼의 화려한 장식으로 성탄의 참된 가격을 깎아 내리는 홀림이 올해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9.11 테러 참사 이후 미국은 제 정신으로 돌아서고 있다. 거리마다 성조기를 휘날리는 자동차 행렬, 집집마다 펄럭이는 성조기가 미국이 지금 어떤 분위기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후방단결 전쟁이다. 국민정신의 정화와 누리고 사는 자유의 소중함을, 테러로 변장한 악령의 발악을 보면서, 한 국가의 정치체제와 종교와 문명이 얼마나 인간의 소중한 근본 생명을 운명적으로 바꾸어 놓는가를 전율하며 보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성조기에 불빛을 빤짝거리는 장식으로, 집집마다 어떤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름도 설은 나라였던 아프가니스탄, 그곳의 지형과 도시들의 이름들이 인접한 미국의 주(州)보다 가깝게 보인다.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연기 속에서 한 인생을 살고 가야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철 모르는 어린아이들, 배우고 인격을 성숙시켜야 할 나이에 자나깨나 총을 들고 싸우는 어른들을 보면서 장난감 하나 없이 살인의 총대를 들고 자라는 것을 본다. 잘났든 못났든 여성 본능의 보이고 싶어하는 자신의 얼굴마저 한 평생 가리고 살아야 하는 이슬람권 국가의 여성들이 집 밖에 나설 때마다 ‘차도르(머리를 덮어 싸는 보자기)’를 쓰는 이유는 남녀가 상대의 육체(겉모습)만 보고 인격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슬람의 극단주의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로는 전 국토의 높은 산악 암반 속에 길게는 300m까지 동굴을 파고 전쟁 요새화했다. 평지에는 마약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 밭에 화려한 환각의 꽃밭을 이루었다. 하루에 다섯 번 태양의 방향에 따라 신발을 벗고,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들어 펴 유일신인 알라에게 기도를 해야 복을 받는 웃지 못할 모습으로 살고 있다. 이것을 문명의 특성이라 묵인해도 옳은 일일까?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가정에서 오순도순 살면서 먹고 싶은 것 먹고, 입고 싶은 것 입고, 가지고 싶은 것 가져 보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여행하면서 살다 죽는 것이 기본이다. 너무도 짧은 한 인생의 생명이다.
그런데 그 기본은 자유라는 구조체제 안에서 가능하다. 그 자유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인간은 결국 자유를 위한 투쟁의 삶이 아닌가. 무지로부터, 빈곤으로부터, 억압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구조체제로부터 자유의 토양을 가꾸어 간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문명과 문화가 이루어 놓은 종교라는 틀에 갇히는 것이다. 종교는 어느 종교든 인간의 자유,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최상의 자유로 설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가 정말 인간의 기본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죽음의 자유를 당근으로 인간을 노예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유는 물론 외부 조건보다 내부에서 인간의 성숙과 함께 높이 자라고,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가만히 보면 매우 어리석은 점이 하나 있다. 자기에게 있는 자유를 이용하려 하지 않고 자기에게 없는 자유만 원하고 있다.”(S. A. 키에르케고르) “목자(牧者)는 양의 목을 물고 있는 이리를 쫓아 버렸으니, 양은 목자를 그의 해방자라고 감사한다. 그러나 이리는 똑같은 행동에 대해 목자를 그의 자유의 파괴자로서 비난한다. 이는 명백히 양과 이리가 자유라는 말의 정의(定義)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것이다.”(A.링컨)
예수는, 당시 로마라는 구조체제와 허위와 허식으로 회칠한 무덤이 되어버린 죽은 형식에 매인 전통종교의 혁명이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을 끌어당기며, 하나님과 사람을 얼싸안고 피로 절규하지 않았던가. 자유라는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자유가 수탈당하고 있는가.
죽음에서의 자유, 그것이 종교가 주는 마지막 당근이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채찍을 휘두른다. 하나님은 자유를 사랑하고, 항상 자유를 수호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에게만 자유를 주신다. 자유는 자유를 아는 사람에게 해방과 평안을 주고, 자유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결과적으로 억압과 구속을 잔인하게 안겨준다.
2001년 성탄의 절기에 자신 속에 커가는 자유의 기쁨과 평안을 재어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의 실체(實體)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예수 성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Holy War’라고 선언하지만, ‘Unholy War’가 되고 있는 자신의 내부의 ‘더러운 전쟁’이 깨끗케 되는 성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