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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나는 행복의 다리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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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2021.03.20 [09:41]

    오늘도 나는 행복의 다리를 건너간다

    행복을 짜내는 강물을 보며

    강용원

    ▲오늘도 나는 행복의 다리를 건너간다   ©뉴스

    뉴욕에는 다리가 여러 개 있다. 밤에 보면 더 아름다운 다리들이다. 스테이튼 아일랜드를 잇는 베르자노 브릿지는 우아한 자태의 여성상이고 뉴저지를 잇는 조지 워싱턴 브릿지는 기상이 넘치는 남성상이다. 다리 건축사의 명물로 100년이 넘은 브루클린 브릿지는 고운 레이스를 걸친 신부의 가려진 얼굴 모습이다. 롱아일랜드를 잇는 드록넥 브릿지를 안개 낄 때 건너가면 어느 천상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이 다리들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있다. 쓸데없는 일로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뉴욕같이 비싼 브릿지 톨을 내면서는 더욱 그렇다. 다리를 생각하면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생각난다. 그 주제음악도 좋아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내 기억 속에 35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연합군의 다리 파괴작전이다. 마지막 그 다리가 폭파되면서 그 다리를 통과 중인 일본 기차가 산산조각이 되어 공중에 나뭇잎 날리듯 산화되는 장면을 보고 영국군 장교가 외쳤던 말이었다. “미쳤다. 미쳤다. 우리 모두는 미쳤다.” 같은 인간들끼리 목숨을 걸고 만든 다리에 목숨을 걸고 다이너마이트를 장착해서 그 다리를 지난 사람이나 그 다리를 파괴한 사람이 거의 모두 함께 죽어 없어지는 라스트 신이었다.

    다리를 건넌다는 말은 운명적인 결단의 동의어로도 쓰인다. ‘돌아 갈 수 없는 다리’-no return bridge-가 판문점에 놓여 54년 간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다. 다리는 건널 ?없는 곳을 이어 주고, 끊기어진 절망을 잇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의선 복구에 돌아 올 수 있는 다리를 기대하다 지친 나는 최근 북쪽군 용역부대가 철수했다는 소식에 절망감이 가슴을 에이고 있다.

    나는 뉴욕에서 33년째 살면서, 13년은 뉴욕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다리를 건넜고 20년은 뉴욕을 들어가면서 이 다리들을 건너고 있다. 뉴욕의 다리들 중 나는 특히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허드슨을 가로질러 세계의 중심 맨하탄이라는 바위섬과 미국의 대륙을 잇고 있는 이 다리는 그 이름부터가 상징적 미국의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변은 초봄의 기운에 가장 예민하다.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 강변 도로는 워싱턴의 벚꽃을 가장 먼저 받아 피게 하고, 강변의 개나리는 2백 리 길 웨스트포인트까지 끝없는 찬란한 봄축제의 꽃길을 강변으로 치장을 하기 때문이다. 허드슨 강을 따라 베어마운틴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 문학의 산실로, 워싱턴 어빙의 ‘립반윙클’ 같은 20년 세월이 술 한 잔 속에 흘러버린 신비로운 꿈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다.

    이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올 때마다 나는 어떤 행복감에 젖게 된다. 지금까지 이 다리를 몇 번이나,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건넜던 것일까?! 다리를 가만히 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한 올 두 올, 북채를 왼쪽 오른쪽으로 왕복시키면서 발로 그것을 다져 가면서 베를 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명주실로 비단도 짜시고, 삼베도 짜셨다. 다리 위를 왕래하는 수많은 자동차들은 마치 저마다 실 꼬리를 물고 왼쪽 오른쪽으로 왕래하는 실 북처럼 보인다. 조지 워싱턴 브릿지는 베틀이고, 그 밑에 도도하게 흐르는 허드슨 강은 계절 따라 짜여지고 있는 옷감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저마다 자기 인생의 베틀에 앉아 저 나름대로의 옷감을 짜다 간다.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오늘도 밑에 흐르는 허드슨 강물을 보면서 베 옷감으로 짜여지고 있는 내 인생을 본다. 비록 그것이 무명베라도 내가 짠 것이기에 더욱 귀하게 보인다. 오늘도 다리를 건너면서 나의 꿈을 짠다. 그리고 다시 희망의 미래를 비단 옷감으로 짜고 싶은 것이다. 행복의 옷감을 짜고 싶은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짜고 있는 인생 속에 결과로, 의미와 보람으로 안겨지는 것이지, 행복을 목적 자체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쯤 서울은 가로수 은행나무마다 새 순이 나고, 恝攬媛?남산에 아카시아 꽃향기가 휘감고 돌 것이다.

    생명의 보람은 고난을 통과해서 왔다. 우리의 행복, 생명은 고난 속에서 영글어진다. 행복의 라일락 꽃을 함께 피워 가는, 함께 나누는 고난과 행복 신록의 절기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그래서 나는 끊어질지도 모르는 조바심을 안고라도, 행복을 짜 내려가는 강물을 보며 오늘도 이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예수프론트라인 : 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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