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이 흰 눈으로 덮여 있다. 새로 시작하는 2001년에 새 마음, 새 결심, 새 계획을 설계하라는 자연의 충고로도 보인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절망이요, 종말을 의미한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준비가 없으면 내일이 없어진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 작년보다 다른 올해의 설계를 세워야 하겠다.
새해를 맞으면 우리는 무엇인지 모를 기대와 설레는 기다림이 있다. 작년에 못다 이룬 일, 못다 푼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올해는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다. 혹시나 올해는, 혹시나 오늘은 하는 기대감으로, 사주팔자를 보고, 토정비결을 보고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주인이 된 나대로의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우연의 연속에 허우적거리다가 일년을 낭비하고 말 것이다.
1과 2 사이의 냉엄하고도 엄격한 격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 앞에 열려 있는 2001년은 한 마디로 ‘격’(激)의 시대다. 격변과 격동, 격랑과 격돌의 파고가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될 조짐이 예견되고 있다. 사람으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극(極)과 극의 격차가 극한을 이룰 것 같기만 하다. 격과 극의 격돌의 혼미일 것이다.
내 앞에 주어진 365일은 열려 있는 기회의 순간들이다. 기회를 놓쳐 버리면 인생을 버리는 것과 같다. 시간은 흘러가는 물과 같다. 흘러가는 물 속에 낚싯줄을 던지는 타이밍이 매듭을 짓고 성취 마디가 한 고리 두 고리를 이어 가야 한다. 이 격변의 시대에 다른 사람이 세워 놓은 이벤트에만 개처럼 끌려서 살면 자신의 인생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자기 시간 관리의 주인이 되자. 컴퓨터에 탑재된 일정 관리나 팜 시리즈에 더 없이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다. 시대가 급변하니, 속담도 옛 시대의 속담 명언을 뒤집어 산다. 모자는 거꾸로 쓰고 옷도 뒤집어 입는 풍조로 20세기 템포에는 거부감을 가진 초음파 콩코드 시대에 와 있다.
- 돌다리는 두드려 볼 것 없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 놓고 올라라./ 아는 길은 곧장 가라./ 버스가 지나간 뒤라도 손 흔들면 백미러 보고 선다./ 가다가 중지하면 간 만큼 이득이다./ 천리 길은 비행기로 날아가라.-
1과 2 사이의 나의 성장을 위해 나대로의 팁을 올해는 더욱 실천해 보려 한다. 특히 젊은 세대는 삶의 패러다임이 그 인생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기회와 시간은 붙잡는 사람에게 친구가 된다.
①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감사합니다”(죽음에서 다시 살아 온 듯, 생명 경외를 경각하고).
② 세면 하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잘났네, 잘났어.” 하고 한차례 씩-웃어보자(자화상의 긍정).
③ 옷을 입으면서, “오늘은 나의 날, 내 인생이 최고야.”를 한 번 외쳐 본다(내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확인).
④ 신발 끈을 조이면서, 오늘의 우선 순위를 조인다.
⑤ 오늘 해야 할 일(to do list)을 메모한다(나의 큰 목표를 향한 오늘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⑥ 수첩과 팜을 항상 휴대한다(계획은 영원히 살 것처럼 세우고, 실천은 내일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한다.)
⑦ 일들의 우선 순위를 수시로 정리·조정하고, 체크포인트를 해 나간다.
⑧ 일일 일선 - 가장 사소한 일이라도 하루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 한 가지를 생각해 두고 실천한다(잊혀진 친구에게 전화 한 통화, 노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 길거리에 날리는 휴지 조각 하나라도 줍는 일).
⑨ 갓난 어린애의 순수한 얼굴과 그 미소를 자주 본다(세태에 일그러진 내 모습의 고향을 찾아).
⑩ 그 날 일은 그 날에 끝낸다(기회를 놓치지 않는 독수리가 물 속의 살몬을 낚아채듯이).
“시간에는 오늘이 없고/ 영겁에는 미래가 없고/ 영원에는 과거가 없다.”(A.테니슨/ 어째서, 그리고, 왜) “사람의 지혜와 힘이 다하는 곳에 하늘이 있고, 이 천도(天道)에 순응해 갈 때 인간의 지혜는 밝아진다.”는 장자의 말도 있다.
시간적 관념에는 두 가지의 개념이 있다. 하나는 자연적 시간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적 시간이다. 전자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허무의 흐름이며, 후자는 과거와 미래를 가진 타이밍의 창조적 과정이다. 창조적 하루를 위해 하늘의 힘을 구해야 한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예수의 말씀은 창조적 삶을 운명에 떠내려 가지 않게 하는 ‘기도’의 생활화다. 기도는 내 영혼의 모든 세포 속에 24시간 항상 젖어 있어야 한다. 기도는 나의 온 몸으로 나의 생활로 드리는 하루를 창조하는 역사를 이룬다. 기도는 대화이고 숨통이다. 올해는 우리들이 소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북산에 사는 우공이란 자는 나이 90이 되었는데도 자기가 사는 북산은 높지 않은데 좌우편에 우뚝 솟아 있는 태행산과 왕옥산이 있어 갑갑한 생각이 들었다. “내 저놈의 두 산을 기어코 깎아 내려서 평지를 만들고야 말겠다.” 하고 실제로 산을 깎아 낼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이웃 사람들은 비웃었으나, “두고 보시오. 내가 비록 늙었지만 내가 하다가 죽으면 아들이 계속할 것이오.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있고, 손자가 죽으면 증손, 현손 대대로 깎아만 내면 필경은 평지가 되고 말지 별도리 있겠소. 산이 크지 못하는 것이니 자연 평지가 되고야 말 것은 뻔한 일이 아니오.”
이 말을 들은 산신은 가만히 생각하니 큰 일이었다. 영감 말과 같이 산이 크지는 못하고 대대로 전해 가며 깎아만 내면 필경은 없어지고 말 것이니 할 수 없이 상제께 노인의 계획을 아뢰고 선후책을 물었다. 상제는 “미련하고 고집 센 놈한테는 할 수 없다.” 하고 두 신장(神將)을 불러 두 산을 떠메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 놓게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