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편견은 무서운 것이다. 한번 굳어버린 사람 마음은 얼음보다 차갑고 바위보다 무정해진다. 그것은 철조망과 지뢰보다 단절의 벽을 사납게 하고 동물보다 무서운 증오로 살육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겹겹이 층을 이룬 편견과 깊은 골이 진 증오도 일시에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분단 55년의 한 겨레, 한 핏줄이 5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이끼를 씻어버릴 수 있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지난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눈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고 “눈물의 위력”을 다시 한번 깨달아 본다. 원래 우리 민족은 눈물과 정이 많은 민족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다. 피가 있다면 파란색 철분 독기가 가득 찬 철혈(鐵血)이 흐르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런 내게 근래에 보기 힘든 나대로의 순수한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나도 알지 못하던 곳에서 저 밑바닥 가장 깊숙이 숨겨 있던 곳으로부터 북받쳐 오른 눈물이다.
지난 해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면서, 북녘 땅을 볼 때도 눈물이 흘렀다. 백두산 천지(白頭山 天池)는 민족의 한을 머금고 억누르고 있는 눈물이었다. 중국땅 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비룡폭포는 폭포 소리가 아닌 우리 민족의 통곡으로 내 귀를 때렸다. 나도 울었다. “두만강 푸른 물이…” 55년을 울다가 눈물마저 메말라 버린 듯 가볍게 흐르고 있는 두만강에 손이 잠겼을 때도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란 무엇일까. 눈물 중 가장 숭고한 눈물은 어머니의 자녀를 향한 눈물일 것이다. 그 어머니의 눈물을 논리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척추동물의 누선에서 나오는 각막과 결막을 적셔 노폐물을 씻어내기 위한 생리적 신경 반응으로 분비되는, 알칼리성 염분을 함유한 투명한 액체에 불과하다. 망막을 적셔 주고 포도당과 산소를 공급해서 눈을 보호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눈물에 감정과 사랑이 곁들여 흐르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감동과 눈물, 슬픔과 눈물은 인간의 인간됨의 증표가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 설명이 없이 본능적 인간됨의 반응일 뿐이다. 눈물이 감정과 정상적 신경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건강의 증표다.
눈물에는 거짓 눈물도 있고, 배우가 연출하는 연기 눈물도 있다. 서양 격언에는 여자의 눈물에 속는 남자는 바보라는 속담도 허다하다. 근래 한국은 정치가의 법정 눈물이 유행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는 눈물도 있고 남몰래 흘리는 눈물도 있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우는 울음, 아파서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 분하고 원통해서 우는 울음, 이별과 부모의 사별을 슬퍼하는 눈물은 어쩔 수 없는 진실의 순수한 인간 본능이다.
남북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칠천만 한겨레가 “남 몰래 흐르는 눈물”로 눈물이 빗물 되어 삼천리 금수강산을 장마비로 적시고 흐르고 있다. 평양 학생 소년예술단이 10일간의 서울 공연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손을 흔드는 어린 학생, 고개를 숙이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어린이들을 보았을 때 나도 우리 모두도 한겨레는 북받치는 설움과 눈물을 같이 흘렸을 것이다.
잠실벌에서 북한 교예단의 묘기에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소리는 차라리 갈라진 민족의 운명을 통곡하는 소리로 들렸다. 메말랐던 우리 민족의 눈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터지고야만 눈물이었다.
김대통령이 북녘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 직접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에서도 우리는 눈물이 흘렀다. 김대통령과 김정일의 악수 장면을 보고 나도 엉엉 울었다. 숨소리까지 죽이며 기도하며 조심스럽게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았다. 남북공동 성명에 서명하고 두 손을 서로 잡고 건배를 할 때, 김정일 위원장의 컵을 단숨에 비우는 모습에서도, 두 정상이 서로 얼싸안고 배웅하는 장면에서도 우리는 어떤 민족의 한풀이의 눈물이 솟아 흘렀다.
순수한 눈물에는 논리가 없다. 계산이 없다. 이제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보는 고향길이 열렸다. 남북 이산 혈육 칠백만이 흘린 눈물이, 그리고 칠천만 겨레가 흐르는 눈물이 이제 우리의 망막에 낀 오물을 씻어 새롭게 보는 비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정상만남 후 첫 사업으로 임진강 홍수대책 사업부터 공조한다고 한다. 남북을 갈라놓은 임진강 홍수는 우리 겨레의 홍수 같은 눈물이었다.
30세 청년 예수는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십자가의 피가 되어 한 피로 화해와 용서와 화합과 한 아버지 밑에 한 형제임을 보이고 갔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남 몰래 흐르는 우리들의 눈물”이 피눈물로 진실하다면 우리의 통일은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희망에의 도전은 삶의 요체다. 우리 민족성은 본래는 순수하다. 민족 기질도 특이하다. 55년을 서로가 버티는가 하면, 55년도 어제 일처럼 돌아설 수 있는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민족의 정과 눈물로 점철된 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대동강도 한강도 두만강도 그래서 오늘도 눈물로 흐르고 있다. 우리는 천년학(千年鶴)의 울음소리가 백두산 천지에서 환희의 찬가로 울려 퍼지는 눈물의 희망 노래를 듣고 있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지구상에 우리를 당할 민족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