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우리 땅을 다시 찾은 54년이 되는 해다. 그 가슴 벅찬 해방과 자유의 감격에 무감각해져 버린지도 오랜 것 같다. 땅을 빼앗기고 자유도 잃어버린 암울한 36년 동안의 처절했던 몸부림을 경험했던 세대가 아직도 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시간대 위에 있다.
하나의 민족이 점유하고 살고 있는 땅의 영역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뼈를 깎이며 체험했다. 땅을 잃으니 나라도 국호도 없어지고, 마음대로 발 부치고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없는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던 서러운 국제고아, 방랑의 세상에 살아야 했던 일이 아직 먼지도 털지 못한 채 생생하다.
착취당한 내 땅 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 많은 애국지사, 의사 열사들이 국내 국외에서 하나 밖에 없는 그들의 생명을 던진 몸부림과 피 맺힌 절규의 한이 있었다. 탑골공원의 유관순 만세소리, 헤이그의 이준 열사, 하르빈의 안중근 의사, 상해의 윤봉길 의사, 논개등등... 이름도 없이 죽어 없어진 우리의 선구적 애국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다시 서게 되었다. 이승만을 중심한 민주주의적 대한민국이 새로 건립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같은 하나님의 비상 간섭이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초등학생이라도 이 나라가 어떻게 다시 세워진 것인가를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어떻게 세워진 대한민국인데, 작금의 이 나라의 현실을 보면 국민의식이나 지도층의식이 너무도 탐욕성 부패의 이기주의의 늪 속에 허우적거리고만 있다. 우리는 지나온 과거를 너무도 쉽게 망각한 나만의 대한민국, 나대로의 대한민국, 내 것만의 대한민국을 챙기고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60억 인구 중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우연만 일수 없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우연이 아니라면 어떤 뜻이 있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
위성 위에서 내려다 본 지구, 그 중의 대한민국은 지구상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나라, 지구상에 가장 혼란의 나라, 내일 아침을 예측 할 수 없는 위기의 나라, 어느 순간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안고 있는 나라로 보인다.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인터넷신문들의 조회수를 많이 올리고 있는 이유가 숨가뿐 한국현실을 그래도 객관화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도로 찾은 땅인데, 그 땅위에서 이제는 우리끼리 재벌독식의 민주주의 박탈식 독버섯을 키우고, 정치라는 패싸움의 아수라장, 종교성 아집의 이기 성취의 종탑은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지금 같은 세상이면 깰 때도 되었는데, 사람이 마시고 살아야하는 상수원에 청산가리140만톤을 부어 대는 사회의식은 깨어 날줄을 모른다. 권위주의, 한국식 출세지상주의, 내자식만 성공하면 된다는 뻔뻔스런 가정교육풍토, 신토불이 몽매국수주의, 총체적 무질서, 서열의식, 연고의식, 배타적지역주의, 위선과 부패의 무저갱 속의 깊이를 모를 종교계 허영, 교주만 있고 공동체는 숨어버린 독선 독불 바벨탑 종교들이 백상어의 독아를 드러내고 있다. 몸은 떨어져 있으나 나 자신도 물론 이들 중에 한사람이다.
어떻게 세워진 대한민국인데, 건국 54년 겨우 찾은 땅위에서 하늘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시대불감증, 도덕윤리, 위기의식의 마비, 나 몰라 나 홀로의 개인만 있고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땅과 영토의 개념이 바꾸어진 시간이다. 이른바 사이버스페이스의 신대륙이 펼쳐있는 시간이다. 이미 겨우 찾은 대한민국 땅의 영역만이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만 해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다.
창고를 헐어 세계최대의 서점을 확보해버린 아마존(Amazon.com) 이나, 지구상 죽은 개미새끼도 찾아내는 야후(Yahoo.com)는 더 이상 반도 삼천리만의 영토한정이 아니다. 넷스케이프나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러러도 그렇다. 새 대륙을 발견한 청교도문명은 이제 달나라 화성에까지 새 땅을 찾고있다.
성서의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당신의 영을 불어넣었다. 성서의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불러 세워 약속의 땅을 보여 주었다. 성서의 하나님은 땅을 독차지한 이집트 땅에 끌려가 노예가 된 사람을 끌어 내 자유를 주었다. 약속의 새 땅에서 인간이 누리고 살 자유를 약속했다. 약속의 땅과 자유는 영적인 차원의 믿음이라는 계약 속에 창조주와 사람의 인격적 자유와의 맺은 계약이다. 그런고로 땅과 자유는 영적인 차원의 것이다. 예수는 자기 살을 찢어주며, 전 지구촌 사람들이 하나가되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땅 끝까지, 모든 족속으로 예수의 정신으로 하나되게 하라는 마지막 분부를 하고 갔다. 그러나 아직 종교의 성지, 예루살렘마져 네 쪽으로 갈린 채, 사랑대신 증오로 대립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이고자 하면서 분열, <사랑>이고자 하면서 증오의 대결로 세르비아 인종청소, 북아일랜드 종교분쟁은 우리가 대면해야 할 새로운 전쟁이다.
어떻게 다시 찾은 땅인데, 눈에 보이는 땅만이 자기 땅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과 자유가 소유의 축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서 주는데서 얻는 것임을 깨 닳을 시간도 되지 않았을까? 그래야 칼국수를 만드는데 밀가루인지 농약인지 분간할 수 있는 국민의식이 혼미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다시 찾은 땅인데, 참된 땅의 의미와 참 자유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오히려 못 배우고, 빈손으로 시작한 평범한 시민들이 그들의 마지막 생을 정리하면서 산소 같고 생수 같은 새 희망을 주고 있다. 평생 독신으로 곰탕 집을 해서 모은 재산 55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68세의 강처녀 할머니, 30년간 몸베바지에 검정고무신으로 얼어붙은 손에 입김을 불어 녹여 만든 김밥 할머니 50억원을 충남대에 기증하였고, 못 배운 것이 한이 된 이종대 할아버지는 50억원을, 90세 오현우 할아버지는 36억원을 고대에 환원했다. 움켜쥔 내 것만의 땅이나 재산을 풀어야 생기가 돌아 건국 54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재벌특권층은 옛날 황제가 부럽지 않는 고대광실 집무실에서, 한국의 일급두뇌들을 간신을 만들어 부리며 세습(世襲) 재벌독식을 획책하고 있다.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재벌독식 이기성 세습(世襲)주의가 국민의식을 좀먹고 병들게 하고 있다. 국민의식의 골수를 빨아먹고 있는 황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