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 깨끗함을 입은 자입니까?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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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의 비유(마 13:47∼50) 1986년 갈릴리 호수에서는 예수님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10미터, 폭 3미터인 배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배는 시간이 2000여 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그 당시의 삶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매우 흥분시켰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갈릴리 호수는 현재 약 25종의 다양한 물고기가 번식하고 있고,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분명히 밝혀진 것은 그 당시에는 이 호수에서 고기 잡는 일이 매우 번창한 사업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은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 위치한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였으며, 그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었다. 또한 예수를 좇던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어부였거나 어부가 아닐지라도 고기 잡는 것에 친숙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익숙한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한 특성에 관하여 귀중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계신다. 특별히 이 비유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유사점이 많은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두 종류(알곡과 가라지,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로 ‘분리한다’는 결론 부분과, 50절과 42절이 한 단어도 다르지 않고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 등은 두 비유를 함께 취급하여도 되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짝 비유(parable pair)’로 취급할 수 있는 다른 비유들과는 달리 두 개의 비유가 서로 떨어져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비유의 소재가 다르며, 강조점에 차이가 있어 짝 비유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1.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이 비유를 읽으며 그 당시 배경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물’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투망과 같은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된 단어는 누가복음 5장 5절에서의 ‘투망형식의 그물’과는 차이가 있다. 이곳에서의 그물은 그 당시에 사용되어지던 소형 저인망(dragnet)이라 할 수 있는 그물이다. 이 그물은 보통 높이 2미터, 길이는 약 100미터가 되기도 하였는데 그물의 윗부분에 코르크(cork)와 같은 그물을 뜨게 하는 물체를 달고 밑부분에는 무게가 나가는 쇠 같은 것을 달았다. 그러한 그물을 한 쪽은 바닷가에 놓아두고 다른 한 쪽은 배에 실어 바다로 저어가다가 반원을 그리며 육지쪽으로 그물을 끌어와 고기를 잡기도 하며, 두 배가 바다로 나가 함께 그물의 두 끝을 잡아 바닷가를 향하여 반원을 그리며 나옴으로 고기를 잡기도 하였다. 결국 이 방법에는 최소한 여섯 사람 이상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천국의 확장 속에 백성들의 협력의 필요성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한 방법을 통해 모아 온 고기들을 추려내는 작업을 비유하여 마지막 때에 일어날 심판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좋은(good) 고기와 못된(unfit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마태복음 7장 17절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됨) 고기를 구분한다는 것은 레위기 11장 10절의 말씀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즉, 율법을 좇는 유대인들은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예를 들어 뱀장어와 메기와 같은 종류들은 지금도 먹지 못할 고기들로 여기고 있다. 가치 있는 것으로 선택을 받는가 아니면 버림을 받는가라는 면에서 고기 잡는 비유와 마지막 심판과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이 비유의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의인과 악인은 어떠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분명히 하고 있지는 않으나,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을 인정하고, 그 분을 개인의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차별 없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마치 이러한 믿음에 근거한 가르침과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 보이는 메시지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또는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4) 등이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을 함께 주어진 문맥 하에서 살펴보면 분명한 한 가지 논리를 끌어낼 수 있다. 바로 ‘진정으로 믿었다면 의로운 삶은 당연하며 기대되는 삶이다.’는 것이다. 바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즉 의롭다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믿은 후나 믿기 전이나 차이가 없다면 ‘과연 진정으로 믿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도 ‘믿고 그 믿음을 좇아 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의인’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이 비유를 통하여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마치 각종 물고기를 모아 골라내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인간들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이다. 둘째, 마치 잡히어 그릇에 담겨지는 좋은 고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의롭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모아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셋째, 마치 골라내어 버려지는 못된 고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구속함을 받지 못한 자들을 골라내어 영원한 버림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49, 50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비유의 결론 부분이 이 메시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통해 마지막 심판에 특별한 강조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앞에서 이미 접한 비유인 ‘곡식(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 36∼43)와 이 비유의 매우 유사한 점 중에 하나가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을 보편적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생명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함께 존재하고 있는 상황, 다르게 표현하면 ‘참 하나님의 백성’과 겉으로 보기에는 교인들 같으나 ‘하나님의 백성인 듯 보이는 사람들을 포함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들’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그러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와는 달리 ‘과연 언제까지 이러한 상황을 허락하시려나이까?’라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계신다. 먼저 이 비유는 언제까지라는 질문에 관하여 그물이 던지어져 마지막 거두어지는 그 순간까지라는 답을 주고 있다. 그물이 거두어져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추려내듯 마지막 때에 좁은 의미의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자격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별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취하여야 할 두 가지 행동이 있다. 첫째, 지금은 그물이 던지어져 육지로 끌어당겨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결국 우리가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할 일은 최대한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계층, 인종, 언어 등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까지 우리는 전하는 것에 정진하여야 하며, 구별 없이 차별 없이 전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열매를 마지막 때에 심판자 되시는 분께서 구별하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둘째, 그때가 오기 전에 우리 모두는 자신에 관하여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서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혹시 우리가 교회 안에는 있으나 교회에 속하지 않은 자(in the church, but not of the church)일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깨끗한 자들의 반열에 속하는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여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을 통해 진정 깨끗함을 입은 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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