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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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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 마 20:1-16의 "포도원의 품군 들"의 비유 -
    미국에서 어린 아이들이 빨리 배우는 표현 중에 "It's not fair ("그건 공평하지 않아요")라는 것이 있다. 이 표현을 빠른 시간 내에 배워 적절한 곳마다 사용하는 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이 공평하며 정당하게 되어져야 한다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에 내가 어느 곳에 고용이 되어 새벽부터 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그 작업이 끝나기 한 시간 전에 들어온 사람과 동일한 품삯이 주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느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It's not fair"라고 말을 하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할 것 같다. 우리의 일반적 논리로 보면 내가 더 많이 일을 하였으니 더 많은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의 비유의 핵심은 이러한 논리의 적용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함께 그러한 논리가 적용되어 질 수 없는 한 곳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1.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비유의 시작을 "천국은"이라고 하는 점을 중시하여 보아야 한다. 즉, 이 땅의 논리를 통해 이 비유를 해석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무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늦게 왔을 지라도 아마도 훨씬 더 질적인 노동을 공급하였기 때문에 같은 임금을 받았다"는 등으로 이 비유를 설명하여 버리려는 노력은 허사이며 또한 이 비유를 통하여 노사 관계의 원리나 경영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도 무의미한 노력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은 비유의 끝에 "그럼으로 너희도 가서 이렇게 행하라"라는 명령의 말씀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써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천국"이라는 것과 함께 그 다음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이 비유의 중심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는 아침부터 포도를 추수하기 위해 수시로 장터에 나가서 품군을 모으는 사람이었다. 아침 7시, 9시, 12시, 3시와 해지기 한 시간 전인 오후 5시에도 품군 들을 모았다. 본문을 보면 이 주인이 품군 들에게 한 구두약속을 발견할 수 있다. 2절에서는 가장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는 무리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씩" 약속하였으며 4절에서는 9시부터 일을 시작한 무리들에게 "너희에게 상당하게 (what is right and fair) 주리라"라고 하였다. 그 이후의 사람들과는 이러한 구두의 약속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유사한 약속을 하였으리라 쉽게 상상하여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양의 시간을 일한 무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무리들에게 같은 하루 임금인 "한 데나리온"씩 지불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불공평함"은 먼저 온 무리들의 "집 주인을 향한 원망"(11절)으로 표현이 되며 이러한 불평을 향해 집주인은 두 가지 사실을 상기 시키고 있다. 한가지는 위에서 언급된 그들과의 "약속"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소유를 가지고 그가 원하는 데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것에 더해 우리가 간과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은 이 주인의 평가인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5절)라는 부분이다. 바로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먼저 온 무리들이 불공평하게 취급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들어온 무리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히 베풀어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며 또한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모습임을 예수님은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10절의 "먼저 온 자들"과 12절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이 비유 속에 등장하는 품군 들을 둘로 나눌 수 있다. 결국 이 비유에는 세 등장인물이 나온다. 5시에 와서 한시간 일한 사람들 ("나중 온자들"), 그 보다 먼저 온 모든 무리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다. 이 등장인물 들을 중심으로 발견할 수 있는 세가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중 온 자들"(12절) 즉, 십일시(오후5시)에 들어온 사람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겉으로 보기에 자격 없는 사람들일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이시며 자유로운 선택하심을 통하여 관대하게 맞아주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이다.

    둘째, "먼저 온 자들"(10절)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즉, 일시 (7시), 삼시 (9시), 육시 (12시), 구시 (오후 3시)에 온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느 누구도 불공평하게 취급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상당하게 (즉, 공명정대하게)" (4절)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여야 한다.

    셋째, 포도원 주인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시각에는 모든 제자들 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다른 비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듯 이 한가지의 비유로 천국이 다 설명될 수 는 없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천국을 주관하고 있는 원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의 하나인 "은혜"라는 면이 우리 모두로 하여금 복음과 구원에 대한 생각을 재검토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전도할 때 자주 듣는 답변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리게 되었던 운 좋은 한 강도와 같이 마지막 죽기 전에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전까지는 마음대로 살고 말입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며 "일찍부터 주님을 믿으며 헌신한 사람과 만약 동일한 "대접"을 받는 다면 좀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번 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서로 상극되는 태도에 관해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답변을 오늘의 비유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바로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에 부르신다면 그것이 은혜이며 또한 일찍 부르셨다면 그것 또한 은혜라는 것이다. 어느 것도 불공평한 것이 없으며 오히려 모든 것이 관대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았으며 누구도 불공평하게 취급을 당하지 않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손해를 경험하신 분이다. 그 분의 풍성한 은혜로 인해 "손해"를 입으신 것이다.

    천국은 "은혜의 원리"가 "공평과 공적의 원리"를 우선하고 있는 곳이다라는 것이다. 이는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한 사실인가?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공평의 원리가 앞선다면 과연 누가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러한 원리 하에 그 분의 나라를 확장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 비유는 우리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하여 우리가 받은 것이 상대적으로 적음을 보지 말고 우리가 받은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을 훨씬 지나쳐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감사하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평과 불만 만을 일삼는 영혼은 축복 자체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오히려 "남의 것보다 적다고 또는 못하다"며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 불쌍한 모습으로 전락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차고 넘치는 관대한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감과 동시에 그 은혜를 전하며 살자. 모든 이들에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너무 늦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너무 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생각하는 공평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천국을 바라보며 아직도 "천국은 공평하지 않은 곳"이라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