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 분을 섬기는가?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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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종(누가복음 17:7∼10)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이 비유는 한 사람의 종을 데리고 농사를 짓는 소박한 주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비유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볼 때 주인이 종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매정하고 심지어는 인격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유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에 당연시되었던 고용주와 고용인의 ‘차갑고 사무적인’관계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주인이 종에게 무슨 일을 맡겼을 때 종이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은 단순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행한 것에 대하여 주인이 종에게 빚을 진 것같이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유가 의도하고 있는 이상으로 의미를 비약하여 주인이 종에게 고마워하는 마음과 예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들 또는 예수님과 그 분의 제자들의 관계의 한 면을 이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고 계신다. 1.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이 비유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주어진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누가복음에서 이 비유는 ‘제자도에 관한 가르침’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9장 후반부에서부터 시작하여 19장 중반부까지의 거대한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 속해 있다. 또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절에서 분명하듯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시며, 더불어 3절 전반부에 암시되어 있듯이 ‘지도자들, 또는 선생들’을 향한 지속적인 경계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죄 용서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3절후∼4절). 또한 제자들의 믿음을 더해달라는 부탁 속에 암시된 그들의 관심인 믿음의 크기(size)에 반하여(5절)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믿음의 존재(presence) 자체에 무게를 더하고 계신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6절). 그러한 가르침 다음에 주시는 말씀이 오늘의 비유이다. 결국 이 비유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삶에 대한 명령을 주시는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맥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이 비유에서는 우선적으로 주님과 제자의 관계 속에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여야 할 요소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것은 종은 주인이 시킨 것을 하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해야 할 것을 행한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대체 왜 예수님께서 이러한 메시지를 지닌 비유를 말씀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한 답은 바로 그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특별히 존경을 받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에게 경계하라는 의도로 말씀하셨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바리새주의의 핵심 가르침의 하나였다고 여겨지는 ‘구원을 이루는 행함의 역할’이었다. 누가복음 18장 11절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의 ‘세리와 비교한 상대적 의로움’을 감사하는 기도(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이에 내려갔느니라;14절)는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이 ‘오직 은혜’라고 하기 보다 ‘자신의 공적’이라는 변수가 늘어갈 때 남들과 비교하게 되며, 남을 섬기려는 자세보다는 ‘누가 으뜸인가’라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알게 모르게 젖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주의를 주고 계신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표현해 보자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주님의 제자들을 향해 주님이 기대하고 기뻐하시는 태도는 ‘상급’을 당연시하며 일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급이 ‘부산물’이 될지언정 결코 목표가 될 수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빚을 지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았을 때 성경 10절에서 종이 자신을 향한 ‘올바른’평가는 ‘무익한’이라는 표현보다 ‘단순한’(원어의 단어가 필요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변혁을 일으키는 주님의 제자로서 그 분을 향한 올바른 태도는 ‘저는 그저 단순히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자입니다’라는 것이다.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이 비유를 살펴보면 7∼9절까지는 주인의 입장이 강조되어 있고 10절에서는 이에 대한 종의 당연한 응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두 면을 통하여 다음 두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가 선택한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하실 모든 권리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결국 그 분이 모든 것의 주권자이심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실 임무와 역할까지도 결정하시는 분이시다. 둘째, 이렇게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분의 명령을 좇아 순종하는 것을 통해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획득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곳의 종처럼 주인이 명한 것을 아무 기대나 생각 없이 임무를 행해야 한다. 즉, 택함을 받은 사람들(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이 비유는 우리가 ‘왜 그 분을 섬기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으로 ‘축복 받는 것이 신앙의 모든 행위의 이유와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기복신앙적 요소가 많다는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의 한 단면을 재평가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이에 비해 ‘신바리새주의’라고 할 수 있는 요소와 잠재 가능성에 관하여서도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바리새주의가 그러하듯이 자신의 ‘의로운 행위’에 대한 대가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분위기는 ‘개인의 권리’에 친숙하며 노동에 대한 ‘당연한 대가’를 기대하는 모습이 알게 모르게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말씀은 조금 어색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은혜라고 말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때로는 남보다 또는 그 정도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최소한 이 정도는 해 주시어야 한다고 여기는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서 오늘의 비유는 우리 모두에게 ‘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진솔한 답을 원하고 있다. 이 비유를 통하여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성경적 정답’은 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여, 섬김과 봉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섬김과 제자의 삶을 맡겨진 역할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의 행위가 감사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섬김, 예배, 순종이라는 것이다. 물론 너무나 틀에 짜여진 답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섬김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상급’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상급의 존재에 관하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 분이 주시는 이유는 그 분이 은혜와 자비로우신 분이기에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그 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였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바로 ‘모든 것이 은혜’이며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족하다’ 라는 관점으로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의식과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우리 모두가 기억하여야 할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은혜와 특권을 부여하신 분도 주님이시며, 역할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며, 그 결과의 영광을 받으시는 분도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 분이 먼저 우리를 택하셨고, 그 분의 주권으로 이 땅에 직접 오셔서 ‘변혁의 사역’ 을 시작하셨으며, 그 분이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시며 그 일을 확산하신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라는 영광스러운 변혁의 사역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동원된 하나님의 종들일 뿐이다. 스스로 솔직히 답해보자. 당신은 섬김의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가? 박성민 목사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 및 신약학 박사(Ph.D.)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C.C.C. 총무 겸 서울C.C.C.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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