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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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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함께 뭉치어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
    요한복음은 제자도라는 주제에 관하여 논하여 질 때 공관복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경시되어온 부분이다. 그러나 요한 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제자"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복음서로서 제자도라는 커다란 그림에 매우 중요한 요소를 더하여 주고 있다. 특징적인 것으로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열두 제자의 이름을 다 나열하고 있지 않으며, 다른 곳에서 예외 없이 불리워지는 그들의 역할을 표현하는 전문적 의미를 지닌 "사도"라는 단어가 전혀 쓰여지고 있지 않은 것 등이다. 또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에 포함된 제자들을 향한 기도는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17:20]) 매우 폭 넓은 대상을 향하고 있음도 우리가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저자 요한의 관심과 강조의 영역이 특정한 그룹으로서의 열두 제자들 보다는 미래적 제자들에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요한 복음 속의 제자도는 우리와 더욱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1. 소위 "제자들"과 진정한 제자들

    제자도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때 요한 복음 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은 세 종류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는 "세상"이라는 예수님을 반대하며 핍박하는 무리, 둘째는 예수님을 좇았으나 어느 결정적 순간을 만났을 때 그들의 기대와 다른 모습의 예수님을 발견하고 떠나는 무리,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으며 동시에 아는" 무리들이다.

    이러한 무리들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유형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특별히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은 인간의 눈으로 판단이 매우 힘이 든다. 그러나 요한 복음 속에 그려진 그들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면 그 둘 간에 매우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에 속한 무리들은 예수를 좇고 있는 "제자들"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그들의 잣대는 세상적인 요소로 만들어 져있다. 그럼으로 6:15절에 나타나 있듯 예수님의 기적을 보며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 하는 자"들이며 그러한 기대와 부응하지 못할 때 예수님의 "제자 됨"을 던져 버리는 자들이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66]).

    이와는 대조로 세 번째 유형의 무리들의 특징 묘사에 사용되는 단어들이 있다. 거의 각각 100번 가량씩 요한복음을 통하여 사용이 되어졌으며, 또한 매우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믿는다"라는 단어와 "안다"라는 단어로 진정한 제자들에게만 국한이 되어 나타난다. 6장에서 소위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난 후 베드로의 고백인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6:69)에서 알 수 있듯 진정한 제자란 예수님을 "믿고 또 아는" 자들인 것이다.

    2. 진정한 제자들의 특성

    그럼 예수님을 "믿고 또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간접적 답변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제자에 관한 표현을 살펴봄으로 얻어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 곳을 통하여 어떤 사람들이 진정한 제자인가를 가르쳐 주신다.

    첫째, 그 분의 말씀에 거함으로 자유함을 얻는 자들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31-32). 다시 말해 말씀을 지킴으로써 죄, 죄책감, 독선, 위선, 자기 기만 등등에서부터 자유를 경험하는 자들이다.

    둘째, 그 분의 사랑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3:34-35). 어떻게 예수의 제자인가를 아는가? 바로 "다른 제자들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이 시약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째, 그 분 안에 거함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 자들이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5:8). 어떠한 열매를 의미하는가? 전도의 열매, 품성의 열매, 행위의 열매 등을 맺는 모습이 그 들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세가지는 한 가지씩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왜냐면 세 가지 모두가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특별히 21장 15-17절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 분의 "양을 먹이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통해 알 수 있듯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예수님께 속한 공동체를 향한 섬김이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3.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진정한 제자들 간의 특별한 '관계'

    우리는 흔히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라고 고백하며 찬양을 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러한 표현의 대상은 '진정한 제자들'을 향한 것이며 또한 그 표현과 함께 주어진 조건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4)고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여기서 "친구"라는 표현은 결국 매우 특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특별한 관계'로서의 "친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표현을 둘러싸고 있는 말씀인 15:12-16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친구"라는 특별한 관계의 의미와 그 관계가 내포하고 있는 점들에 관하여 발견하게 된다. 첫째, 예수님은 "친구"된 자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가장 커다란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은 그 분의 명령을 행함으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다. 세째, 그 "친구"라는 관계는 가장 중요한 것을 나눔으로 형성되며 특별히 길, 진리,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분명히 알도록 허락하심이 포함되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중요함이다. 바로 예수가 그 친구들을 향해 사랑을 보여주신 것 같이 예수님의 친구들간에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지닌 자들간의 특별한 사랑의 관계인 것이다.

    이 예수님의 친구들 간의 사랑과 그 사랑의 열매인 "하나됨"의 중요성은 17장의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에서도 분명히 나와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단순히 인간적 차원에서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사랑과 하나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제자들 간의 교제나 화합이 아닌 궁극적 목적을 염두에 둔 하나됨 이라는 것이 17:21절과 23절에 나와있다. 바로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예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며" (21절) 또한 "아버지께서 나(예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3절). 즉 세상으로 하여금 "믿고 또 알게"하기 위함 즉 '제자화 작업'이라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현시대의 개신교 속에 팽배해 있는 "우리 교회," "우리 단체" 등의 집단 이기주의적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말씀이다. 흩어져 버린 교회, 서로 경계하며 자신 만을 돌아보는 교회의 모습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되어 이 세상에게 비(非)세상적 모습을 보여주기를 그 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두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결국 서로를 '섬김'을 통하여 사랑 안에서 같은 목적으로 일치된 행동을 하는 하나됨을 인하여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세상에 "튀는" 모습으로 세상의 관심과 호응을 통하여 전도와 선교가 있을 수 있다.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지닌 자들로서 그 분을 전하기 위해 함께 "튀는" 제자들의 모습이 되기를 기도하시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함께 뭉치어 "튀는" 예수의 제자들의 무리 속에 동참하지 않으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