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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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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 복음서 속의 '제자의 삶'을 조명한다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음서를 영화에 비유한다면 제자들은 예수라는 주인공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함께 보내며 그 주위를 맴도는 두드러진 인물들이다.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시작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까지의 모든 장면에 때로는 믿음의 화신으로, 때로는 승리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이는 자들로, 때로는 철저히 패배한 모습으로 그들은 등장한다. 사 복음서만도 약 230번 정도 나오는 단어인 "제자"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12명을 향하여 주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 들 외에도 예수 주위를 좇아 다닌 일반적 무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마 28:18-20절 등을 통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은 결국 예수의 제자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결국 사 복음서에 등장하는 제자들과 그 들에게 주어지는 제자의 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펴봄으로써 '예수와 그들'이라는 역사적 측면 즉 객관적 사실을 넘어 '예수와 우리'라는 개인적 측면 즉 주관적 사실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다음 몇 달의 연재를 통하여 복음서 각각에 나타나 있는 마치 다이아몬드의 여러 면과도 같은 '제자의 길'에 관한 독특한 강조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한 강조들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삶의 평가와 함께 그러한 진리들을 종합하여 빛을 비추는 삶으로 나타나는 제자들의 삶에 대한 방향 제시로 나타날 수 있다. 먼저 사 복음서에서 전반적으로 공유하는 특성을 살펴본 후에 다음 호에 복음서 각각의 독특한 특성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예수와 제자'간의 관계의 독특성

    '제자'라고 해석된 헬라어 단어는 '(어느 사람이나 그 사람의 가르침을) 좇는 자'라는 의미로 폭 넓게 사용이 되어지는 단어이며 그 개념 또한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라는 개념은 다른 관계와 비교하여 볼 때 독특한 특징이 존재한다. 특별히 유대교에 존재했던 랍비와 제자와의 관계와 비교하여 볼 때 다음 예수의 제자는 세 가지의 독특성이 있다.

    (가) 예수의 초청: 랍비와 제자와의 관계는 제자가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이루어 진다. 결국 존경하는 랍비를 찾아가 그에게 배우며 그러한 배움을 통하여 랍비와 같이 되거나 그보다 더욱 뛰어난 랍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는 예수의 주도권으로 이루어 진다. 눅 5장에서 나타나있듯 먼저 그가 누구인가를 보이시며 그의 제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예수의 사역에의 동참: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넘어서, 막 3:14절 등에 분명하듯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그들을 초청한 자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결국 '예수의 제자'는 예수의 사명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 ('사도'라는 단어의 문자적 의미)인 것이다. (다) 예수가 부여하는 권세: 막 3:15절("권세도 있게 하심") 등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보냄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권세와 능력도 부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예수의 제자'를 향한 요구

    어떠한 모습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가는 위에서 '예수와 제자'간의 관계의 특징 세 가지와 직접 연결하여 정리해 볼 수 있다.

    (가) 예수의 초청을 향한 자세: 눅 5장 등에 나타나 있듯 제자들은 그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였고 (5절), 본인들의 죄인 됨을 고백하였으며 (8절),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좇았다 (11절). 이러한 모습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궁극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좇는 다는 것이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는 희생과 댓가가 존재한다. 우리 모두 눅 14장에서 가르치는 대로 망대를 세울 때에 비용을 계산하여보며, 전쟁에 나갈 때 승산의 가능성을 따져보듯 제자에로의 초청 또한 신중한 검토를 요구한다. 이러한 검토 시 제자가 되는 것이 "극히 값진 진주 하나"와 또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마 13장) 비교되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가치를 보지 못함으로 고민과 망설임 끝에 결국은 응하지 못한 부자 청년은 위의 제자들을 통하여 보여준 것과 대조되는 모델을 제시한다 (마 19:16-22).

    (나) 예수의 사역에의 동참의 의미: 막 6:12에 나와 있듯이 제자들은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함으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동참'은 단순히 '같은 사역에 참여하다'라는 것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보아야 한다. '예수의 사역에 동참한다'라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셨던 같은 경험이나 같은 핍박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라는 말씀을 이해하여야 한다 (마 10:24-25). 예수가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얻듯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동안의 고난을 거친 후에만 영광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고난 후 영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영광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예수의 십자가 사건 전에 실패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예수의 제자는 예수의 사역에의 '진정한' 동참(고난과 핍박까지도 포함하는 동참)을 통하여만 그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다) 예수가 부여하는 권세의 역할: 아무 힘을 쓸 수 없는 위치가 무의미하듯 권세가 부재한 사도들("보냄을 받은 자들")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막 6:7),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마 10:1)이 주어졌고 사용되도록 허락하셨다. 물론 이러한 것은 그의 제자로서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만 경험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막 9장). 이러한 종류의 권세와 함께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된" 특권과 함께 영원토록 함께하는 보혜사 성령의 존재는 예수의 제자들로 하여금 두려움 없이 예수님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끌도록 하여 준다.

    3. 맺으며: 우리는 어떠한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현대의 소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무분별, 무책임, 무능력이라는 단어로 묘사되는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부르심의 가치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며 부자 청년처럼 세상에 속한 것들에 더욱 귀중함을 부여함으로 망설이며 고민하다가 결국은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타협하고 만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은 하지만 고난과 핍박을 받는 것을 피하고 "영광스럽게 보이는 위치와 일들"만을 좇아 다니며 "제자(?)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권세의 역사를 막아 버리며 결국 자신의 별볼일 없는 능력과 허세만으로 가득찬 모습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제자'이기 보다는 '예수의 제자인 듯한'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무슨 변명과 말을 할지라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마 7:21-23)라는 구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될 것은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위의 약점들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에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는 제자가 되도록 겸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가난한 심령'(마 5:3)을 보시고 우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진정한 제자로 만드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