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세요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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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의 비유 (마 5:13∼16; 막 9:50; 눅 14:34, 35)
좋은 정보와 귀하고 아름다운 메시지들을 담아 전하는 기독교 잡지 중에서 「빛과 소금」이라는 잡지가 오랫동안 간직하였던 그 이름을 「소금과 빛」으로 바꾸었다. 물론 마태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소금’의 비유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빛’의 비유가 나오므로 잡지의 이름이 이제 성경적 순서를 좇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보다도 ‘소금’은 ‘빛’과 같이 눈에 쉽게 띄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성같이 고유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면에서, 소위 유명 기독교 인사들보다 이제는 평범하지만 꿋꿋이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도에서 이름을 바꾸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러한 설명은 위의 비유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이해 이외에도 우리는 흔히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 비유의 바로 앞에 팔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결하여 본다면 이 가르침도 예수님을 좇는 제자들의 삶에 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과연 제자도에 관한 어떠한 면을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현대인과 같이 소금의 성분에 대한 화학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금이 그 맛을 잃는다.’는 말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소금이라 부르며 사용하는 소금은 염화나트륨(Sodium Chloride)으로 매우 안정적인 화합물이다. 물론 심장병이나 고혈압 환자들을 위해 나트륨을 피해 다른 종류의 염(salt)을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나, 쓴맛이 강해 보통 소금이라 일컬어지는 화합물은 염화나트륨이 일반적이다. 예수님 당시 소금을 얻는 방법을 보면 사해의 물을 증발시키거나 사해 가장자리에 있는 소금으로 덮인 흙을 함께 들어내어 윗부분에 있는 소금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다가 소금을 다 쓰면 그 밑의 흙 부분을 버렸다. 이러한 상황과 연결하여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는 표현을 다양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한 모습들을 우리는 다양한 주석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소금 자체는 매우 안정된 화합물로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이해와 연결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한 랍비의 유명한 예화가 이러한 소금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한 사람이 랍비에게 “선생님, 어떻게 하면 맛을 잃어버린 소금을 다시 짜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한 질문에 랍비는 “노새가 새끼를 낳으면 그러한 일이 가능해진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새란 한 대에서 끝나버리는 결코 새끼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그러한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며, 그러한 어리석은 질문에 적절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진정한 소금은 그 맛을 잃어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만약에 그럴 수 있다하더라도, 그 맛을 잃는다면 어떻게 그 맛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결코 다시는 짜게 할 수 없으며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말아버린다는 것이 이 비유의 의도이다.
이 비유에서 과연 소금이 맛을 내는 것에 쓰였는가, 부패를 막는 용도로 쓰였는가에 관하여 서로 다른 의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강조되어 있는 것은 오히려 ‘소금의 소금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소금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그 맛을 잃었으면”이라는 헬라어 원어가 ‘맛을 잃어버리다’(become tasteless)라는 의미가 있는가 하면 ‘어리석게 만들다’(make foolish)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은 ‘혹시 한 단어로 두 의미를 연결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특별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두 제자도에 관한 가르침을 주신 직후 결론적으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즉, 예수의 제자라는 단어 속에는 이미 제자로 사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자의 제자됨’을 이야기하면서 제자가 제자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소금이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과 비유될 수 있는,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되는 사실임을 강조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의 말씀도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제자들에게는 그들에게만 기대되는 특별한 삶이 있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마태복음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지만 소금의 비유와 연속하여 더해진 빛의 비유도 유사한 메시지를 가르치고 있다. 마태복음 5장 14절의 메시지에서도 분명히 하고 있듯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함”같이 제자의 제자로서의 삶은 분명히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또한 5장 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마치 등불이 어둠을 비추듯 주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변혁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다른 이들이 보고 그러한 변혁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 분을 좇는 제자들은 그 분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믿는 이들의 모임인 ‘시온’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필요하다.(참고: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모든 제자들을 향하여 한 가지 귀중한 삶의 교훈을 주고 계신다. 모든 제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 소금으로서의 역할인 부패를 억제하며 메마르고 거친 세상에 ‘풍미’를 더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또한 빛과 같이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마태복음에 주어진 이 비유의 마지막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계신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위의 비유 중 특별히 마태복음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을 들으며 한 설교가의 평가가 생각이 난다. 그는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진 크리소스톰(Chrysostom)이라는 초기 기독교의 유명한 설교가로, 그가 말하기를 “만약에 기독교인들이 그들에게 기대되는 삶을 살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록 성경을 읽지 않으며, 성경 속의 하나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일지라도 소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는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아니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 것들에는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착한 행실’이 있다. 믿는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 ‘선하고, 사랑과 자비가 가득한 행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마가복음에서 기록하듯 우리에게 ‘소금의 역할’, 즉 서로를 향해서 제자도의 삶을 사는 증거인 ‘하나됨’의 모습이 필요하다. 제자들이 제자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갈 때 우리 가운데 ‘화평함’이 있을 것이며 그러한 모습들을 통해 주위의 다른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유사한 원리를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의 일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2,23). 다시 말해 믿는 이들의 하나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데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소금의 역할 또는 기능이 무엇인가에 관하여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소금은 소금의 특성(맛을 내기 위함이건 부패를 막기 위함이건 간에)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며, 빛이 빛의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듯, 주님의 제자들은 삶의 모습 속에서도 제자됨의 증거들이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증거로 우리 믿는 이들은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도덕적 영향력을 말과 행동에서 보여주어 도덕적 부패를 막아야 한다. 소금과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의 존재를 그 영향력을 통해 발견할 수 있듯이 개인적으로 또는 힘을 모아 사회 속으로 침투하여 들어가 패역하고 타락한 세상을 제어할 뿐 아니라 바로잡는 힘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삶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빛처럼 비추어내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으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오늘부터라도 주님의 제자답게 이 세상에서 말씀대로 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는 자들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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