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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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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은 은사를 감사하며 사용하세요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열 므나’의 비유 (눅 19:12∼27)

    이 비유는 마태복음 25장 14절에서 30절에 기록되어 있는 ‘달란트의 비유’와 매우 유사하나 흐름과 세부내용에 많은 차이가 있어 별도로 취급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대상들을 향하여 수없이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기록된 비유들간에 유사성이 있을지라도 메시지의 초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란트의 비유’와 비교하여 볼 때 이곳에서는 무엇보다도 달란트라는 커다란 돈의 단위를 사용하지 않고 ‘므나’라는 100데나리온, 즉 육체노동자의 100일 임금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돈의 단위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돈을 맡긴 이는 단순한 주인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왕이다. 종들에게 각기 다른 액수를 맡기기보다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한 므나씩 주었을 뿐 아니라, 종들이 남긴 이익조차도 100퍼센트 대신 1,000퍼센트와 500퍼센트인 부분, 이외에 이야기의 흐름도 매우 다르다. 이렇게 겉보기에도 다른 비유를 통하여 모든 이들에게 부여하신 은사의 활용에 관해 또 다른 가르침을 주시고 계신다.

  • 1.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이 비유의 독특한 점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잔인한 한 역사적인 인물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배경의 주인공은 헤롯대왕의 아들인 아켈라오(마 2:22)로, 그가 아버지 헤롯을 이어 왕이 되기 위해 로마로 간 사이에 백성들이 그를 대적하였다는 이유로 그가 유대 지방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어 돌아왔을 때에 자신을 반대하였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 살육을 감행하였던 매우 잔혹하며 포악한 사람으로 그러한 포악함 때문에 왕위에 오래 머물지 못한 사람이었다.
    물론 혹자는 ‘예수님께서 그런 잔인한 사람을 자신과 비교하였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예수님만이 그러한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유대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러한 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가르치실 때 교육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특별히 이러한 실제적 사건을 배경으로 사용하였을 때 아켈라오와 예수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인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시려 떠나심’과 돌아오셨을 때 자신을 대적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두 가지 면은 매우 강하게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왕으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오실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시며 열 종들 모두에게 동일한 액수인 한 므나씩 맡기신 것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그것을 사용하라 (장사하라, put this money to work,13절)라는 명령을 주신다. 바로 달란트의 비유와 달리 모두에게 같은 금액이 맡겨진 것은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과 그럼으로 결국 모두 각자의 신실성을 좇아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 부각되어져 있다. 그 후 왕이 돌아와 종들에게 회계하는 모습에서 이 비유의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열명에게 한 므나씩 나누어 주셨으나 실상 왕과 만나는 종들의 수는 첫째(16절), 둘째(18절), 그리고 또 한 사람(20절)이라고 표현된 종을 포함한 세 명의 경우만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또 한 사람(then another servant)이라는 표현 속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세 사람만을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다양한 경우를 취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맡기어졌으나 사용하지 않은 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과 ‘열심으로 사용한 자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커다란 축복을 대조하고 있다.
    둘째, 우리는 이 비유를 들으며 겨우 ‘한 므나’라는 그렇게 크지 않은 액수를 맡기어 놓으며 장사하라고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나중에 충성된 자들이 받은 므나를 가지고 열심히 일해 남긴 므나의 수만큼에 해당하는 ‘고을들’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보았을 때 ‘적은 돈’이라는 액수 그 자체는 하나의 테스트로서, 그러한 테스트 후 그에 상응하는 상급을 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셋째, 이곳에서는 ‘악한 종’(22절)으로 칭함을 받는 사람의 특징을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주인을 ‘엄한 사람’(21절, austere 또는 harsh의 의미)이라고 부르며 주인을 두려워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진정 그가 왕을 두려워하였으면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어야 하지 않았겠는가?라는 것이다. 특별히 그 돈을 단순히 ‘수건으로(만) 싸 놓는’(20절) 안전하지 못한 보관 방법은 그의 무책임함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비유의 가장 끝부분에 나오듯 결국 그 분이 왕 됨을 원치 않는 무리(27절)에 속하는 자들로 취급되어 영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2.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음 세 가지의 가르침을 주시고 계신다. 첫째,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명백하게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분이 재림하시기 전에 그 분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 즉 개인의 구주요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그 분이 재림하실 때 모든 이들을 평가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각자에게 맡겨 주신 것을 선하고 신실하게 사용하는 청지기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더욱 더 커다란 상급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당신에게 속한 것들을 나누어주시며 그 받은 것들이 최대한 사용되어지기를 원하신다. 받은 것을 가지고 신실하게 행한 사람들에게는, 처음 이 땅에 오신 ‘초라함’과는 대조적으로 왕으로 다시 오시어 그들을 인정하시며 상급을 베푸실 것이다.

  • 3.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어느 교회나 단체를 방문하여 보아도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사실은 섬기는 사람들만 섬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 사실과 연관하여 요사이 경영학과 목회학 영역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80:20(80퍼센트의 역량을 20퍼센트의 우선대상에 투입하라)이라는 비율을 유명하게 만든 파레토(Pareto)라는 사람의 관찰이 떠오른다. 그에 의하면 개미와 벌의 군집에서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20퍼센트만이 일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그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개미나 벌의 상당히 효율적인 모든 작업들이 약 20퍼센트의 ‘일꾼’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만약 우리 교회에서 20퍼센트의 성도들이라도 제대로 움직여만 준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모양이든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들은 바빠서, 관심이 없어서, 특별한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또는 자신이 없어서 등 매우 다양하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은사’를 주셨으며, 주신 의도는 그것이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를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쁜 것을 핑계삼거나 관심이 없다는 사람들은 오늘 비유를 통해서 경고하고 있는 왕으로 오실 그 분의 마지막 평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며 그 분께 속한 것이라면 이 땅의 삶 동안 사장시켜 놓을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러한 부류와는 달리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은 ‘은사가 없다’거나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다’라고 느낀다면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 가르치고 있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바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라고 하셨으며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고 가르치신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우리 인간의 시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말고 주신 분인 하나님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은사를 주신 목적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는 것을 생각하여 볼 때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 이 사실을 기억함과 동시에 우리의 눈으로 받은 것을 평가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눈으로 평가하며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최대한으로 섬기는 우리의 모습이 필요하다. 당신은 받은 은사를 감사하며 사용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