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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복된 사람입니까?"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큰 잔치"의 비유(눅 14:16~24)

    복음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주된 스타일을 보면 주어진 상황과 배경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심으로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현장감"이 넘치는 가르치심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도록 하는 특징이 있다. 큰 잔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비유도 이러한 결론을 반증하는 수많은 예들 중의 하나이다.

    이 비유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14장 1절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 두령의 집에 식사초대(떡 잡수시러)를 받아 가심으로 시작이 된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먼저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위 죄인들이라 일컬어지는 자들에 국한하여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니라, 접촉 가능한 모든 자들에게 사역의 기회를 부여하셨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한 영향력이 있는 자들에게 초청을 받았을지라도 소위 "외교적 또는 정치적"이라는 표현과는 매우 거리가 먼 태도를 취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면 충돌의 방법을 택하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혜롭게 비유나 우회적 표현을 이용하시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 그들을 도전하셨으며 불편하게 만드셨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비유도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1.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민복기 그림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주신 상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예수님께서는 한 바리새인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서 다른 무리들과 식사를 하시는 중이셨다. 식사 진행 도중 한 사람이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15절)라는 말을 언급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표현에 대한 응답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 즉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의 복됨을 말하였을 때 그러한 잔치는 자신들과 같은 의로운 유대인들만이 참여할 수 있으니 자신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라는 자화자찬의 표현이었다. 그러한 말에 대해 예수님은 비유를 통하여 천국의 복된 자리에는 과연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그 당시에는 특별한 잔치의 손님들을 위해서 두 단계의 초청이 행해졌다. 잔치를 배설하고자 하는 사람은 초청할 사람들에게 종을 보내어 일시를 알려주며(마치 요사이의 RSVP와 같이) 그들의 응답을 먼저 받아 오는 것이 첫번째 단계였다. 그리고 그 후 둘째 단계로써 이미 수락한 사람들에게 잔치의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종을 보내어 "초청"의 개념이라기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의미로 알리는 것이었다.

    결국 오늘의 비유 중에서 17절의 그 청하였던 자들이란 이미 첫번째 단계에서 초청에 응한 사람들로서 단순히 초청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번복한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이미 응한 잔치에 대한 수락을 번복함으로 자신의 신용과 신뢰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거절로 인해 수치를 느낄, 청한 이의 마음을 염두에 둔다면 18~20절에 기록된 그들의 거절의 이유들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라고밖에 결론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이러한 비유를 그러한 상황에서 말씀하셨을까? 예수님께서 참석하고 계셨던 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 또는 다수가 바로 그러한 거절을 행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자신들을 의인이라 여기며 하나님이 이 땅에 강림하시어 베푸실 잔치에서 당연히 주인공들이 될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기다린다고 말하는 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즉 진정 기다리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시어 그들에게 그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을 초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과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히려 거부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향한 모든 거부의 이유와 비판은 결국 그 당시의 기득권자들로서의 이기주의적이며 자기중심적 성향에서 근거하고 있으며, 결국 그러한 거부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당연시 생각하던 잔치에 궁극적으로 참여치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위의 비유를 통하여 다음 세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 비유에서 잔치에 초대하였던 어떤 사람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관대하게 계급과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을 그의 나라로 초대하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둘째, 잔치가 준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여러 가지 "겉으로 보기에 합리적이며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초대를 거절한 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어떠한 이유도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할 만큼의 가치는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에게 그 분의 초대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비유 속에 나오는 둘째 무리들의 구성상태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관대함은 비록 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자들에 의해 거절 당할지라도 좌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은 그 분의 관대함을, 이 세상의 눈으로 보아 수혜 대상이라 여기기 힘든 극히 "초라한 자들"에게까지 확산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3.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예수님의 사역의 열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 분의 메시지가 그 당시의 기득권자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의 비유 속에서도 그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의 삶에 대한 편안함의 정도가 높을수록, 또한 안주할 이유가 많을수록 그 분의 메시지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신들의 현재의 위치가 최소한 그대로 옮겨지기를 원하는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오늘의 비유와 같은 문맥에 나오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라는 종류의 메시지는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2000년이 지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서도 같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없다. 특별히 자신의 낮아짐을 통해서만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 메시지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이미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속에서도 많이 발견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복음을 처음 접했을 때 자신의 죽으심을 통하여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심에 감사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영화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 나라가 온전히 이 땅에 임하는 순간을 간절히 기대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즉 예수의 제자로 사는 삶에 헌신하는 무리들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점차로 세상의 유혹에 끌리어 세상적 가치관에 타협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오히려 정당화하는 상태로까지 전락할 수 있다. 특별히 물질주의가 주관하는 세상 속에서 재물의 풍부함으로 인한 만족감은 어느 것보다도 그 유혹이 크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에서는 재물로 인한 만족함을 넘어서 재물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들을 향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약 5:1)고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사회 속에서나 존재하는 기득권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약 2:5)라고 하심으로 복음의 역설성을 가르치고 계신다. 물론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잔치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증인들을 통해서도 이미 분명히 드러나듯, 자신의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가난할 때"만이 그 분의 초청을 들을 수 있으며 응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자들만이 그 잔치에 들어가는 복됨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러한 "가난한 자들"을 그 분의 잔치에 초청하고 계신다. 당신은 그러한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