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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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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되지 않습니다"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악한 청지기"의 비유(마 21:33~46; 막 12:1~12; 눅 20:9~19)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소위 "구속사(구원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보면 매우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로서 "구속사"의 테두리 속에서 뜻을 펼쳐가시는 과정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임 받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역사하시며, 인간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또 하나의 다른 성경적 각도에서 살펴보면 택함받은 자의 순종 또는 불순종의 여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단순논리가 성립됨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많은 자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사용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사용하고 계심을 감사하기도 한다. 위의 비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향해, 또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꿈꾸고 바라며 사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가?"와 함께 또한 "위의 단순 논리를 향한 해답은 무엇인가?"를 다루며 인간을 통해 뜻을 펼치어 가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도 알도록 도와주고 있다.

    1.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다른 곳에 살며 자신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맡겨 놓은 후 추수 때마다 땅 주인들이 와서 그 해의 수확 중 자신의 몫을 받아가는 그러한 경우들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상황이 때로는 불만과 긴장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고 이 기득권층과 결탁한 로마 통치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로 인하여 정치적, 사회적 불안감을 자아내는 요인도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당시에 이 비유를 듣는 이들에게 이 비유가 매우 실감나며 현실감 있는 비유였을 것이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먼저 세 개의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를 비교하여 보면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전개는 유사하나 등장인물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특별히 마태는 누가나 마가와는 달리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의 종을 등장시킨 점이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 21장 43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는 표현을 더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행하시기 위해 택하셨으며, 그 일을 행하시기 위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경고하셨으며, 궁극적으로 그 아들까지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무시하고 심지어 처형해 버리기까지 하는 이스라엘의 소위 종교 지도자들을(마 11:45; 막 12:12; 눅 20:19) 향해 심판의 말씀을 주고 계심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이 비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면이 부각이 되어 있다.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이다. 또한 이와 함께 그 구속사의 절정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특별한 위치가 부여된 백성들이었으나 그들에게 기대되었던 "이방을 비추는 빛"의 역할이 반복적으로 무시되었으며, 구속사의 클라이막스인 예수님까지도 죽이는 행위를 마다하지 아니함으로 인해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특권이 다른 "열매 맺는 백성", 즉 예수를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몫이 되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비유 속에서는 시편 118편 22, 23절을 인용하여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를 적절하게 평가하고 있다. 즉,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기적이며 인간적인 시각으로 "하찮은 돌"이라 판단하여 버린 돌이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머릿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시각과 관점으로 매사를 판단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2.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악한 청지기의 비유"라고 알려진 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과 그 계획에 관하여 최소한 다음 세 가지의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설사 선택된 자들이 패역(unfaithful)과 배역(faithless)을 일삼으며, 심지어 반항(rebellion)까지 할지라도 그 목적을 위하여 오래 참으신다. 둘째,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으며 그를 거절한 자들을 멸하시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셋째, 선택한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좌절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한 경우 다른 이들을 선택해서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여 가신다는 것이다.

    3.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19세기를 대영제국의 세기(Pax Britanica)로 또한 20세기를 미국의 세기(Pax Americana)라고 흔히 평가한다. 이 두 나라들은 두 세기를 통해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보내며 평화(Pax)의 복음을 심은 나라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여 볼 때 위의 평가 자체에 공감하게 된다. 그러한 사실과 연결하여 많은 한국 사람들은 20세기 후반부부터는 이러한 영향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성령의 임재"가 우리 한반도로 옮겨 왔다고 말을 하곤 한다. 그렇다. 우리 개신교의 교세만을 살펴볼 때 이러한 평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아니 최소한 80년대 말까지는 진정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교회의 현실은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영역 속에 팽배해 있는 "집단 이기주의"가 "개교회주의"라는 모습으로 우리 교회 속에 점점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한국 교회의 성장은 지역복음화, 도시복음화, 민족복음화라는 캐치프래이즈를 내걸고 연합운동을 하며 형성된 분위기 속에서 상승무드(Synergy)를 타고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그것에 힘입어 많은 교회들이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형성된 교회들의 사역 모습 속에는 개교회의 시각으로, 각자 교회의 "유지 및 관리"를 목적으로 일주일 내내 행해지는 프로그램이 가득차 있을 뿐, 거시적인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을 위해서는 틈새조차 허용이 되지 않는 모습들로 변해가고 있다. 적어도 그러한 우려를 자아내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역시 "이방인의 빛"이 되라고 한 사명을 망각하고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열매 맺는 백성"에게 빼앗겨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때가 많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자기 방어적인" 개교회 중심적 사역으로 교인 수평이동과 함께 전체적으로는 교인들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전도의 대상인 비기독교인들로부터 냉소와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시켜 주시기도 하고, 성장을 잠재우시기도 하시며 감소시키기도 하시는 진정한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함과 함께, 교회의 본분인 "빛과 소금"을 되찾는, 개교회를 뛰어넘은 범교회적 분위기의 형성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믿는 이들이 뭉치어 "사랑"과 하나님 나라의 "목적"에 하나되어 같이 행동할 때 과거의 한국 교회가 성장했을 때처럼 상승효과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결국 솔직히 우리의 현재의 모습에 관하여 말하자면, 세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성령의 임재에 대한 위에서 명시한 우리 스스로의 "평가"는, 단순히 아직은 우리의 바람과 소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가 우리를 제대로 평가하여 보자.
    성경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그러나 우리가 불순종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좌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거부한다면 다른 이들을 사용하시어 그 일을 행하실 것이다. 우리 민족을 쓰시고 계신다는 우리 스스로의 증거들을 발견하며 자족하지 말고 그러한 은혜를 베푸시는 그 분의 뜻을 헤아리자. 다시 한번 우리 교회들이 힘을 합하여 민족과 세계 복음화를 향해 나아갈 때인 것이다. 당신은 우리 민족을 쓰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들의 행렬에 참여하지 않으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