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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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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퍼스 복음화를 꿈꾸며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인류가 기록을 시작한 이후 어느 순간을 살펴보아도 요사이와 같이 모든 것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그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혼돈과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이 당연하다. 익숙한 기존의 틀이 무너지며 다가오는 새로움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변화에 대한 태도라는 것이다. 수많은 변화들 중에 캠퍼스라는 특정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 곳에서의 사역과 연관된 몇 가지 변화를 살핌과 동시에 그 변화들을 향한 우리의 대응 자세에 관하여 생각하여 보자.

    특별히 캠퍼스의 `고유 목적 사업'이라 말할 수 있는 학문의 세계 속에서의 변화를 가장 먼저 지목할 수 있다. 그 곳에서는 이성이라는 판단의 잣대에 감성(또는 경험적 요소)이 더해지고 있으며, 이성이라는 '신'을 모시고(?) 합리성이라는 절대주의를 표방하던 모더니즘의 틀을 벗어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한 마디로 학문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모더니즘을 단편적으로 표현하여 `이성 절대주의적 사고 방식'이 주관하고 있었다고 한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적인 태도인 `절대적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며 그러한 사조를 `절대화'하는 이율 배반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상황들이 우리의 사회,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영역 속에 이미 상당히 침투되어있다. 아니 최소한 대학 캠퍼스는 이미 점령을 당하여 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되는 세상을 더욱 혼돈케 만드는 것은 그 속에서 양산되고 있는 정보의 홍수현상이다. 1993년 예측에 따르며 약 2년마다 우리의 정보가 배가된다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2020년이 되면 73일마다 배가될 것이라는 한다. 또한 이렇게 양산되는 정보의 반 이상이 5-7년 사이 부적절한 또는 부정확한 정보로 전락되어져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와 예측은 변화로 인한 혼돈의 세상을 더욱 더 혼돈케 하는 원인제공 역할에 이 정보의 양산이 한 몫을 담당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정보의 홍수라는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정보를 무차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정보를 선별 선택하여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상대주의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단순한 부유물로의 전락하는 것을 막을 것인가 하는 도전을 주고 있다.

    위와 같은 엄청난 변화의 시대 속에 기성세대의 평가를 좇는 다면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신세대"라는 정확히 정의되어지기를 거부하는 듯한 무리들이 이러한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하며 미래를 향해 `힘차게' 행진을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변화가 이룩할 한 세상의 실세 중의 실세가 될 무리가 오늘날 캠퍼스의 주인공들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무리들인 것이다. 이들에게 과연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 과거에는 이 필자가 복음을 접하였듯 복음에 대한 이성적 '설득'을 통한 철학적, 논리적, 역사적인 변증학적 접근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선의 도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종류의 접근 자체가 점점 더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오히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오직 예수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유일성'을 공격하는 종교 다원주의를 향한 우리의 변호와 방어가 필요할 뿐 아니라 당연시되는 시대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단순한 '변증학적' 입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삶을 통해 변화되었으며 변혁적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요구되는 때라는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기독교인들의 삶은 더 이상 곤란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그러할 때야 만이 정보의 선택의 시대를 가장 잘 적응하며, 개인주의적이며 실리주의적으로 살아가는 이 신세대들에게 전해지는 기독교의 진리가 그들의 생각과 마음속의 필터에 침전물로 걸러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캠퍼스 부흥 자체가 난공불락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어느 때보다 새로운 각오로 대처하여야 하는 당위성이 선제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독특한 학원선교라는 영역에서 사역하는 모든 사역 자들은 역사를 통해 보여준 기독교의 아니 교회의 뛰어난 적응능력을 보며, 그들에게서 그러한 모습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같이 세상의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하며 개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여 온 교회의 숨쉬는 생명력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하며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바로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있다"(계 21:5, 원래의 의미가 지니고 있음)고 말씀하시며 그 분의 백성들을 새롭게 만들고 계신 그 분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음에 이러한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도 그러한 새로움을 우리 중에게 창조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자. 바로 그러할 때 우리의 신앙 공동체는 새로워지며 비로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 수 있게 된다. 변화하는 세상을 통해 `변화'라는 개념을 느끼며, 변화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이 캠퍼스에 변화를 일어나게 하기를 원한다. 봄의 상큼한 향내를 맡으며 캠퍼스의 봄이 오는 것을 꿈꾸어 본다. 오히려 변화의 시대를 통해 우리의 변화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시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