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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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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친 욕심은 영혼의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어리석은 부자 비유”(눅 12:13-21)

    “경제”라는 단어가 어느 때보다도 일반인들의 대화 속에서 부각되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단어는 없는 이들에게는 “생존”이라는 개념으로 또한 있는 이들에게는 “투자”와 “관리”라는 개념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진다.

    모든 경우에 다 그러하듯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은 자연스럽게 주요 관심사가 되며, 주요 관심사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의 중심 속에 자리를 잡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19-21)라는 말씀의 의미를 오늘의 비유는 우리 모두에게 생각하여 보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진솔한 답변을 원하시고 계신다.

    1.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먼저 이 비유를 이끌어낸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형과 유산 문제로 다투고 있는 동생이 예수님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형과의 분쟁을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어떠한 상황인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으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요청에 답을 주시기 보다는 오히려 피를 섞은 형제의 우애까지 가르도록 이르게 한 상황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신다. 특별히 단순히 “유산”에 국한시키지 아니하시고 “모든 탐심(all kinds of greed)을 물리치라”(15절)고 하심으로 근본적으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야망”들을 들여다보며 그것들을 향해 올바른 가치관을 발견하기를 도전하신다. 이러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한 부자가 소개되어 있다. 이 부자는 그 당시의 청중을 고려하여 본다면 가장 쉽게 그들이 연결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농부”로 묘사가 되어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본다면 농부의 더 많은 “소출”은 권력가에게는 더 높은 “지위”로 학자에게는 더 많은 “명성”으로 사업가에게는 더 큰 “사업”으로 적용이 될 수 있다. 이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먼저 이 부자가 잘못하고 있지 않은 점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니 잘못하지 않고 있기 보다는 지극히 당연하며 심지어 배워야 하는 점일 수도 있다. 즉 농부의 훌륭한 관리자의 모습이다. 풍년을 당해 소출이 차고 넘치니 이때 더 커다란 곡간을 지어 그 곳에 그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기로 계획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그 해의 잉여(surplus) 소산으로 혹시 올지 모르는 흉년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현 시대에 모든 이들이 아껴 저축하거나 은퇴를 준비하며 노후를 대비하는 모습과 유사한 지혜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도 예외 없이 미래를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부자에 관한 묘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부자의 표현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일인칭 대명사인 “내가,” “내”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곳은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일인칭 대명사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부자의 ‘자기 중심의 생각’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 평가는 19절의 말씀인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에서 분명히 나타나며 이 말속에는 다음 세가지의 커다란 잘못된 생각들이 섞여 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영혼의 주관자가 아니라는 사실’, ‘축적된 소유가 안정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자신 만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철저히 모르고 있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몰이해(misunderstanding)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의 말씀과 상통하며 그의 삶과 생각의 함수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가장 중요한 절대적 요소가 “변수”로써 전혀 인식되어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것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20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네 영혼,” “네 예비한 것,” “뉘 것”이라는 어느 정도 풍자적인 표현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이 비유는 다음 두 가지의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축적하는 “소유”는 예수의 제자도와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기적인 탐욕은 결국 우리 모두를 거짓된 것에 의지하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둘째, 제자도와 자신 만을 위한 삶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땅의 부는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 계수하는 시간이 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결국 이 비유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떠한 영역이든 간에 관계없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는 모든 것이 문제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이 비유의 가르침은 지극히 원론적이며 인간의 삶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의 생명이 그러하듯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빌려주신 또는 맡기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가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면 우리 마음대로 계획을 세우고 우리의 원하는 대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우리 것인 양’ 우리 만을 위해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참 주인의 뜻을 좇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물질적 소유”에 관한 올바른 관점이 다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늘의 말씀은 특별히 어떻게 재물을 써야 하는 가라는 문제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 있어서 ‘소유물의 위치를 점검하는 것의 중요성’에 초점이 있다.

    성경 속에서는 “소유의 풍부함”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소유의 부족함”이 저주이거나 축복의 부재라고 가르치고 있지않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하여야 한다. 즉 인간의 “소유”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의 범주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축복”일지라도 때로는 받은 자들이 ‘축복이라는 원래의 뜻을 져버리고 “저주”로 전락시켜 버릴 가능성이 있음을 보아야 한다. 바로 모든 것을 위의 비유 속의 한 부자와 같이 ‘자기’ 중심적이 되며, ‘자기’의 능력과 연결하며,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더욱 더 커다란 “축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어느새 “하나님”이라는 “요소”가 축소되어지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의 눈이 근시안이 되어버리며 마침내 영혼의 눈이 멀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결코 “물질적 소유”에 제한되어 질 수 없다. 우리의 재능(Talent)이 그러하며 우리의 미래를 향한 계획이 그러하다. 무엇을 위해 각자의 재능을 개발하고 있는가? 우리의 미래의 계획은 자신의 욕심을 위한 “야망”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비전(Vision)”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인생 방정식”에서 하나님이라는 “변수”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평가에 근거하여야 한다. 엄청난 숫자라 할지라도 그 수 앞에 어떤 기호(+/-)가 붙여졌는가에 따라 그 수의 가치가 정하여 지듯 모든 “계산”의 결과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 위해서는 너무 가까이 가면 모든 존재가 거대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지나친 욕심은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우리의 “소유” 중 필요 이상의 것은 나누어 줄 수 있는 부분이며, 또한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결코 이기적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수시로 생각하여야 한다. 영혼의 건강은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며 ‘우리 각자의 영혼의 건강 진단을 해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