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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형제들이여,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이 비유는 다른 비유들과 비교하여 볼 때 여러 면에서 매우 독특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사후(死後)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주인공의 이름(나사로와 아브라함)이 주어진 것 등 다른 비유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점들이 있다. 이러한 특이한 요소들은 이 비유를 다른 비유와 색다르게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해석상의 어려움을 자아낸다.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여기서 주어지는 이생의 모습이 죽은 후에 두 종류(‘죄인’과 ‘의인’)의 사람들의 실제적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

    민복기 그림

    예를 들어,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곳들이 존재하며 그들 간의 위치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인가? 왜 하필 나사로라는 거지의 이름이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등이다.

    이러한 난해한 질문들로 인하여 오해의 가능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의 궁극적 메시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교훈과 경고를 주고 있다.

    Ⅰ.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비유의 시작을 “한 부자가 있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며, 또한 그 당시 이 비유와 매우 유사한 이야기가 존재하였다는 증거를 고려해 볼 때 이 비유는 ‘실제적 케이스 스터디’로 보기보다는 그 당시에 잘 알려진 이야기를 변경하여 예수님께서 ‘변혁’의 메시지를 가르치고 계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쪽 세상’에서의 두 등장인물의 삶은 매우 대조적이다.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원어에서는 ‘던져졌다’는 의미)”라는 표현과 “개들(wild dogs)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라는 표현에서 엿볼 수 있듯 자기 몸을 방어하거나 스스로 가누기 힘든 피부병을 앓고 있는 매우 심한 신체장애자였으며, 부자들이 기름 묻은 손을 닦기 위해 사용한 후 던져 버려지는 빵 조각으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갈망하는 모습으로, ‘매우 불쌍하며 측은하여 동정심을 자아내는’ 거지의 모습을 지닌 자였다.

    그와 대조를 이루는 모습으로 “한 부자”는 최고급 옷의 상징인 “자색 옷”과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는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삶에 대한 묘사를 들으며 그 당시 사람들은 나사로를 향해, 우리와 달리 그의 ‘측은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정도의 고통을 받도록 만든 그 자신 또는 그 부모의 ‘죄’의 심각함과 연결을 시켰을 것이다.

    또한 부자를 향하여서는 같은 논리로써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며, 특별히 ‘그의 부도덕함이라든지 그의 악함’ 등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그가 존경의 대상으로 비추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이 두 주인공이 ‘이쪽 세상’을 떠나 ‘저쪽 세상’에 갔을 때 사람들이 당연시 할만한 기대를 온전히 뒤집는 상황으로 전개가 된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하는 사실은 비유 속의 사후세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유대인들의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단순히 사용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는 비유의 목적이 사후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어느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운명에 초점이 있다는 사실과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의 가르침과 매우 차이가 있다는 사실로도 보아 알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이러한 충격적 역전의 이유인가?”라는 것이다. 단순히 부자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아브라함도 부자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또한 단순한 새옹지마(塞翁之馬)적 사고방식이나 인간 운명이 사후의 세계에서 바뀌어진다는 단순한 ‘형평성’의 논리로도 설명되어질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그러한 것들은 성경적도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해석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

    바로 30절에 나오는 “회개”라는 단어이다. 바로 이 “한 부자”의 삶은 구약 말씀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 중의 하나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무시한 모습으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경히 여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자와 대조를 이루는 모습으로 이 비유에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사로”라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이름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나사로는 이 비유에서 주연이라기보다는 조연으로, 그의 이름이 힌트를 주고 있듯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생각하는데 무리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며 사는 자들에게는 심지어 부자가 요청하였던 ‘죽은 나사로의 부활’과 같은 표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마지막 결론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도록 한다.

    Ⅱ.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첫째, 나사로와 같이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자들’은 죽은 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우리들에게 이 땅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가르쳐 주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신뢰하며 천국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둘째, “한 부자”와 같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언제든지 회개와 회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때 그분에게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모세, 또한 다른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 당신과 또한 당신의 뜻을 이미 분명히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무시하는 자들은 심판 때에 다른 변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성된 복음인 성경을 통하여 오늘날도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Ⅲ.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영원히 고통의 삶을 살게 된 자로서 한 부자는 외치고 있다. 과연 “내 사랑하는 사람들인 다섯 형제들을 구원할 길이 없나요?” 비유가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볼 때 우리는 당장 이 질문에 관심을 갖게 됨과 동시에, 이 질문을 향하여 성경은 긍정적 답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 비유의 강조점은 “그러한 자들은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을 때 그러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져야 함’의 중요성과 함께 그럴 때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한 자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동시에 던져 보아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할 것이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게 된다. 우리의 영적, 물질적 소유를 남들과 나눌 때 우리는 ‘영원히 소유될 수 있는 부’를 지닌 ‘영원한 부자’가 될 수 있다.

    또한 현재와 같이 어려운 때에 주위의 불쌍한 사람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보이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습이 절실하다. 특별히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만족하며 자긍하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는지 점검하여야 한다. ‘나중에 우리의 모든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의 삶은 뒤집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그 허락하신 은혜(물질적, 영적)를 나누며 살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나사로”와 같은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더 늦기 전에 ‘영원을 결정하는 선택’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더 늦기 전에 우리의 믿지 않는 형제와 자매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다음을 스스로에게 물어봄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혹시 내가 ‘다섯 형제들’중의 하나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