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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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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아냥거림의 위험

      박성민 간사

      목사, 연세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공학박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졸업(신약학 박사),
      싱가폴 동아시아신학대학원 부총장,
      한국 C.C.C. 총무 역임
      현 한국 C.C.C. 대표


    마 11:16-19/눅 7:31-35의 "장터의 아이들" 비유
    "장터의 아이들"이라고 불리어지는 이 비유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 유에 속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장이 서지 않은 빈 장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이 교훈을 주셨다. 이 비유는 길이가 짧음에 비해 매우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대조하여 보 면 이 비유 속에는 두 부류의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서로"(눅 7:32)를 향하여 다른 놀이 (즉, 한 부류는 '흥겨운 놀이'를 제의하는 반면 다른 부류는 '슬픈 놀이'를 제의하고 있는 모습)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모습인지, 아니면 한 부류가 어떠한 놀이를 제의하여도 그 제의에 냉담한 다른 부류("제 동무," 마 11:16)들을 향해 화난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인지 가 불분명하다.

    또한 만약 후자가 맞다면 이러한 놀이를 제의하고 있는 한 부류의 아이들과 이러한 제의를 따르지 않는 다른 부류의 아이들은 과연 누구를 빗대어 말씀을 하시고 계시 는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놀이를 제의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과연 유대인 들의 모습인가 아니면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모습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의문들은 간과 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질문들이며, 그 결론에 따라서 이 비유의 올바른 해석이 결정되어 지고 그 해석에 따라서 우리의 삶에 적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관찰

    이 비유의 해석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장터에 앉아"(마 11:16; 눅 7:32)라는 표현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부류의 아이들이 수동적인 구경꾼의 모습으로 '앉아서' 다른 부류의 아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하면서 비판 하기를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 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 하였다(마 11:17//눅 7:32)"라는 점이다. 즉 이 아이들은 구경 꾼으로 편하게 "앉아" 자신들은 "피리를 불거나" "애곡하는" 상대적으로 덜 힘든 역할을 하 면서 그 앞의 다른 부류의 아이들에게는 훨씬 더 힘든 일을 하라고 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비유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핵심은 어떠한 놀이를 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장 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제안에 따르지 않고있는 다른 부류의 아이들에게 불평과 비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장터에 '앉아'있는 이 아이들의 모습이 유대인들의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유대인들은 앉아서 지시만하며 비판만을 일삼는 아이들과 같이 '오만하며 불쾌한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그 다음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향해서는 피리를 불며 즐거워 하라고 비판하 며,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의 기쁨의 복음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애곡하지 않는 다고 비판하 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무리들을 이 비유를 통해 풍자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례요한과 예수님의 메시지를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과 비판만을 일삼는 무 리들과 또한 그런 세대를 향해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다.

    2.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이 비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첫째 교훈은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의 복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임과 동시에 그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죄인들 을 구하시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그 분을 믿음으로 얻는 "칭의"(의인으로 불림)라는 선 물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순종해 야 한다. 그러한 복음을 축약한 전도책자를 통해 전도하는 모습을 향해 "너무 쉽게 믿게 하 는 것이 아니냐 또는 너무 복음을 단순화 시키지는 않는가"라는 "불평과 비판(?)"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것이 구경꾼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의 비판인지 아니면 진정한 관심과 염려에 서 나온 목소리인지를 분별하여야 한다.

    둘째 교훈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같은 다가오는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 라가 온전히 임할 때 까지 존재하여야만 한다. 점점 "지옥"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심판이라 는 말을 피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은혜와 구원"이라는 개념의 귀 중함은 "보응과 심판"이라는 개념의 온전한 깨달음 하에서만 경험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세째 교훈은 마 11:19//눅 7:35의 말씀과 같이 "지혜"(하나님 또는 예수님의 "말 씀"의 우회적 표현) 또는 그것을 좇는 자들("자녀," 눅 7:35)은 "증거"로 그 진위성이 나타 난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서도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의 증 거들이 분명히 나타났듯이, 오늘날 그 분을 좇는 우리의 사역 속에서도 그러한 유사한 증거 들이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다.

    3. 이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우리의 현실 속에는 "장터에 앉아서" 명령만 하는 아이들처럼 "입만을 가지고 살 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제의 어려움에 관하여 떠들지만 그 문제에 대하여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적다. 많은 이들이 ' 사회정의'의 부재에 대해 비판을 하지만 정의 구현을 위해 자신부터 실천하려는 노력에는 인색하다. 또한 "평생 야당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주위에서 보곤 한다. 이 말을 하여 도 저 말을 하여도 그들에게서 얻어지는 것은 동일한 비판이며 반대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그 들이 원하는 것을 할지라도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하는 "만성적 비판/조소증"에 걸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러한 파괴적이며 습관적 회의와 비아냥거림에 대한 위험을 외치는 경 고로써 이 비유의 말씀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진솔하게 우리 각자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모습인가? 입만 가지고 살아가는가? 나부터 실천하고 책임을 지는 면에 대해서는 약하지 않는가? 고질적 비판, 불 평, 조소,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자신의 영을 무감각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영적인 식물인 간'의 삶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함을 우리는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 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지라도 그 축복을 경험할 수 없는 자들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메시지의 도전에 응답하며 움직이는 자들을 쓰시기를 원하신다. 긍정 적이며 적극적이며 열심을 다해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진 일꾼들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비아냥거리는 구경꾼들은 필요하지 않으며 주인 의식 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 열심으로 일하는 자들만이 환영을 받는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하 자. 당신은 어느 무리에 속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