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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없는 얼굴 시대"

    계절의 얼굴, 봄 철쭉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 생긴 대로 살자.-

    신록의 오월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나무마다 제 모습을 찾는 달이다.

    땅속으로 숨어 버렸던 온갖 들풀 들꽃이 '나' 잘났다고 활개를 펴는 제 모습의 정체성을 찾는 축제의 달이기도 하다.

    -5월은 두견을 울게 하고 꾀꼬리를 미치게 하는 달. 더러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한 탈선도 하게 하지 않는가. 《김영랑 金永郞/두견과 종다리》-

    제 계절에 제 모습을 확실하게 들어 내 주는 오월을 맞으면서, 변해진 세태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기 모습을 찾아야 하겠다는 각성을 새롭게 하고 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내 얼굴 맞아?' 자신도 모르게 변모해 버린 자기 모습의 상실에 대해, 오월도 신록 이 푸른 계절에 제 모습대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시대 따라 사라져 버린 인성본래의 제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최근 세계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WSJ紙]는 한국여성 "광적 성형수술" 대대적으로 보도특집을 내었다. 강남에만 성형수술병원이 1천 개가 넘고 어느 여성은 5천만 원을 드려 수술을 했지만 아직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한다. 외모도 국가경쟁력인 듯 외모지상주의 파렴치(破廉恥)에 빨려 들어가는 세태가 안타깝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누가 탓 할 수 있을까마는, 나의 모습은 내가 선택해서도 나를 나은 부모도 어찌 할 수 없었던 세상 언어로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내 기질, 내 성격, 내 재능도 나의 선택과는 의논도 없이 태어난 것이다. 한때 마이클 잭슨이 검은 피부를 벗겨내고 희게 하여 수백만 달러를 들여 수술하였다. 후유증으로 몇 년을 잠적해 버린 일이 있었다. 검은 피부가 희게 되었다고 그가 백인으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획일성보다 다양성의 조화에서 미의 극치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상상으로 만일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나 보니 온 세상 사람들이 한 얼굴로 모두 미남미녀로 변해 있다면 무서운 혼란이 올 것이다. 다행히도 조물주는 사람을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게 하나한 특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몇 년 전 북만주 여행길에 서울과 동경거리를 보며 여고생 또래의 여자들의 얼굴이 하나 같이 똑 같이 생긴 것을 보고 놀랜 적이 있다. 세상이 변하니 얼굴도 변한다? 세상은 변해도 내 모습은 영원하다. 잘나지 못한 나의 경우 평생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해 본적이 없다. 아무리 내 인생이 거칠고 험했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팔자도 부럽지 않았다.

    들꽃처럼 생긴 대로 제 모습을 들어내는 신록의 나무들처럼, 생긴 나 자신의 모습에 탄복하고 감사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겠다.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을 좋은 의미로 되 새겨 보아야 하겠다. 천하의 음식 맛이 한가지다. 봄에 쑥국, 달랭이 무침, 콩나물 취나물 조미료로 떡칠을 해서 본래의 맛을 잃어 버렸다. 인생의 아름다움도 외모의 아름다움도 마음에서 온다. 그 마음의 새로움에서 온다. 모든 사람이 가면무도회의 천의 얼굴을 가지고 변장하고 변태적 화장을, 내면 보다 외면에 치장을 하고 있다. 참된 아름다움과 향기는 내부의 생명에서 나오는 빛이다.

    첨단문명의 시대에 얼굴 없는 얼굴들이 판을 치는 곳도 인터넷 독자투고란이다. 차마 눈뜨고 볼 수도 없는 욕설, 사생활 음해공해로 사회를 오히려 병들게 하고 있다. 영국의 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 놓은 예수의 얼굴이 타임지의 특집 커버에 실렸다. 중동계 테러범의 몽타주 사진 같았다. 아이러니컬하게 실종된 '예수'의 현상수배였다. 한국 어느 칼럼에도 '예수 없는 한국교회'라는 글이 있었다.

    그렇다. 프시케 여신이 주피터를 잃어버리고 밤마다 헤맨 것을 미친병이라고 영어표기로는 사이코시스(Psychosis)다. 나 자신의 미쳐버린 예수 혼의 상실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를 잃어버리고 예수 초상화를 방마다 걸어 놓고 저마다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집집마다 못박아 논 십자가에 이 시대의 실종된 예수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다. 마르크스가 본 예수가 다르고, 싸르트르가 본 예수, 렘브란트, 피카소가 그린 예수 모습이 다를 것이다. 류월레스는 벤허의 모습에 예수 얼굴을 담았다.

    우리의 모습은 예수 모습이다. 실종된 예수를 찾아 그 형상을 이룰 때까지 우리 모두 얼굴 없는 제 모습으로 천의 가면을 쓰고 외모를 가꾸며 꾸미고 수술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극에 달한 첨단 테크노 오버로드 된 상태다. 비타민 오버로드, 도시문화의 공룡의 신음소리 같은 소음 오버로드, 공기는 숨막히는 중금속, 지하수까지 폐수가 된 수질오염 오버로드, 환락의 스포일 된 오버로드, 종교인 귀족화, 영적 사치성, 제 모습 잃은 '할렐루야 모습'이 자고 나면 '놀렐루야 모습'으로 둔갑을 해져 있기 마련이다. 야누스 같은 우리의 모습 속에 어느 곳에도 나는 없다. 실종된 '예수'는 잃어버린 나의 모습이다. 겉 사람의 모습과 가치는 속 사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성경말씀대로 우리의 겉 사람은 늙고 병들고 쇠잔해 간다 할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싱싱하고 푸르러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예수의 장성한 형상의 분량'이 날마다 푸르게 내 안에서 성숙되어야 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예수의 형상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느냐에 그 사람의 모습과 인간성과 인생의 길이 달라지는데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글/ 순장. 강 용원(미주KCCC대표) Email : ywkang@kccc.org

    -예수프론트라인 : 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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